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침묵을 깨고 유동성 위기 극복에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박 회장은 11일 그룹 전 직원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두산중공업이 3조원 이상 재무구조 개선을 목표로 연내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자본 확충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본 확충을 통해 마련하는 자금으로 부채를 우선 갚겠다는 뜻이라고 두산 측은 설명했다.
박 회장의 동생인 박지원 두산 부회장도 이날 산업은행을 찾아 우선순위에 따라 자산 매각을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산 매각이 더딘 데 따른 시장 우려와 그룹 임직원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두 오너 경영인이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주주 책임경영 충실히 이행”박 회장은 이날 오전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정부와 채권단의 지원을 받은 것은 금전적 부채를 넘어 사회적 부채를 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재무구조 개선안을 신속히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두산그룹은 지난 4월 채권단에 약 3조원의 유동성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재무구조 개선안(자구안)을 제출했다. 채권단은 지금까지 두산그룹에 한도대출 등을 통해 3조6000억원을 지원했다.
박 회장은 자구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며 대주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두산중공업이 연내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자본 확충을 할 계획”이라며 “이 과정에서 (주)두산과 (주)두산의 대주주들은 중공업의 유상증자와 자본 확충에 참여해 대주주로서 책임경영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주)두산은 두산타워와 일부 보유 지분 및 사업부 등의 매각을 추진 중”이라고 덧붙였다. 두산그룹은 그동안 가능한 모든 자산을 매각하겠다는 방침 외에는 자구안의 세부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박 회장은 특히 “회사를 위해 고통 분담에 동참해주시는 임직원의 희생에 각별한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두산중공업은 비용 감축을 위해 두 차례 명예퇴직을 시행했고, 현재 약 350명이 휴직 중이다. 전 계열사 임원은 4월부터 급여 30%를 반납했다.
박 회장은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는 회사를 걱정하는 여러분을 보면서 회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이제 중공업 유동성 문제가 고비를 넘겼고 일련의 조치에 대한 방향이 정해졌다”고 메시지를 전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솔루스 매각 속도 낼 듯박 회장의 메시지는 (주)두산이 지주부문 임직원의 50%를 다른 계열사에 전환배치한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에 나왔다. 두산의 인력 구조조정이 다른 계열사로 번지는 게 아니냐는 직원들의 불안이 커지는 시점이었다.
박 회장이 연내 유상증자를 추진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지지부진하던 두산솔루스 매각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두산중공업 유상증자를 위해서는 두산솔루스 매각이 선행돼야 한다. (주)두산과 두산 일가가 보유한 두산솔루스 지분 61%를 매각하면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사재 출연 형식으로 두산중공업에 지원하고, (주)두산도 두산중공업 유상증자에 참여할 여력이 생긴다.
두산그룹은 지난 2일 두산솔루스 예비입찰을 진행했지만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됐던 롯데케미칼이 참여하지 않았다. 이 밖에 (주)두산 모트롤BG, 두산건설,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강원 홍천 클럽모우CC 등도 매물로 나와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이날 박 회장의 메시지에 대해 “자산 매각이 늦어지는 데 따른 시장의 불신을 가라앉히기 위한 차원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빈/이상은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