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을 놓고 벌이는 미국과 중국 간 마찰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이 홍콩 보안법 처리를 강행한 것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미국은 1992년부터 홍콩에 부여해온 특별지위를 박탈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중계 무역’과 ‘금융 중심지’로 대변되는 홍콩 경제의 생명줄을 끊어 놓겠다는 의도다.
홍콩 경제는 상품과 자본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면 곧바로 ‘싱가포르 쇼크’에 걸린다. 싱가포르 쇼크란 상품과 돈이 자유롭게 이동하면 성장률이 잠재 수준 이상으로 뛰어올라 ‘인플레이션 갭’이 발생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곧바로 ‘디플레이션 갭’으로 전환하는 ‘천수답 경제’를 말한다.
홍콩 경제는 이미 싱가포르 쇼크에 시달려왔다. 홍콩 시위가 지속되면서 지난해 2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국면으로 전환한 이후 올 1분기에는 -8.9%까지 급락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홍콩의 특별지위가 사라지면 올해 연간 성장률이 -10% 밑으로 추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가 받쳐주지 못하면 홍콩은 ‘헥시트(HK+Exit)’ 문제에 봉착한다. 마이너스 성장으로 전환한 작년 2분기부터 높아지기 시작한 유입자금 대비 유출자금 비율(E/I Ratio)은 한때 3배까지 치솟았다. 홍콩 금융시장에 100달러가 들어오면 300달러가 빠져나갔다는 의미다. 지난 1월 미·중 간 1차 무역합의 이후 잠시 낮아졌던 E/I 비율이 최근 다시 높아지고 있다.
홍콩은 1983년부터 달러당 7.8(밴드 폭 7.75∼7.85) 홍콩달러를 유지하는 페그제를 채택하고 있다. 페그제 운용 이후 1987년 블랙 먼데이, 2001년 9·11 테러, 2009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등 숱한 충격에도 잘 버텼다.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빠르게 쇠락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뛰어넘어 국제금융 중심지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페그제 유지 여부의 최대 관건은 풍부한 외환 사정과 순조로운 외국자금 유입이다. 홍콩의 외환보유액은 한국보다 많은 4400억달러 안팎으로 추정된다. 본원통화의 두 배에 해당하기 때문에 E/I 비율이 1배가 넘지 않으면 페그제는 유지된다. 하지만 E/I 비율이 1배를 넘기 시작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1990년대 초 유럽 통화위기, 1997년 아시아 통화위기 등에서 경험했듯이 페그제가 위협당하면 홍콩달러의 약세를 겨냥한 환투기 세력으로부터 공격당할 가능성이 크다. 페그제가 무너지면 ‘자금 이탈과 실물경기 침체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
홍콩이 아시아를 비롯한 국제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하면 파장이 의외로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자금 이탈로 홍콩 증시와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면 ‘마진 콜(증거금 부족)’이 발생해 ‘디레버리지(기존 투자 회수)’ 과정에서 투자 원천국과 인접 국가로의 연쇄 파동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홍콩이 페그제를 유지하지 못하면 누가 ‘안전판’ 역할을 담당할 것인가 하는 점도 관심사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재원 부족에 시달려 회원국의 구제금융 요청을 다 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회원국 금융시장도 구제금융과 같은 사후적 방안보다 지배구조 개선과 같은 사전적 방안으로 안정을 기할 것을 권고하고 있을 정도다.
미국은 페그제가 붕괴하면 홍콩과 자유롭게 교역할 수 없게 되고, 홍콩 금융시장에서 누리는 특혜도 포기해야 한다. 중국의 홍콩 보안법 처리 강행 이후 곧바로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지 않고 절차에 들어간다고 선언한 가장 큰 요인이다. 하지만 특정국의 페그제 유지만을 위해 기축통화인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어렵다.
중국은 ‘웨강아오 대만구(大灣區·Great Bay Area)’ 개발에서 홍콩을 제외했다. 부진했던 선전, 상하이를 홍콩을 대체할 국제금융 중심지로 키워 ‘팍스 시니카’ 야망을 달성해 나간다는 의도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페그제가 조기에 붕괴돼 미국과의 경제관계가 단절되기를 바랄 수도 있다.
앞으로 중국이 어떤 식으로 나올 것인지가 관심을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의 약점을 파고들어 홍콩 내 자국 예금을 인출하거나 위안화 절하로 맞설 경우 ‘달러 페그제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홍콩 보안법으로 인해 홍콩 시위가 줄어들면 특별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미국, 홍콩, 중국 모두에 유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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