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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속수무책 저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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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의 싸움도 힘겨운 판에 또 하나의 치명적 ‘저출산 바이러스’가 한국을 뒤덮고 있다. 통계청은 그제 1분기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을 0.9명으로 집계했다. 출산율이 ‘2.1명’은 돼야 인구가 유지된다는데 낮아도 너무 낮다.

1분기는 ‘출산 성수기’다. 자녀가 또래에 뒤처지는 것을 싫어하는 많은 부모가 1분기 출산을 선호해서다. 0.9로 추락한 1분기 성적표는 올 한 해 출산율 0.8명대 진입을 예고한다. 코로나 팬데믹은 전 세계를 덮쳐 동병상련의 위안이라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맞닥뜨린 초저출산은 동서고금에 유례가 없는 수준이다.

가보지 않은 길에서의 두려움은 《인구론》 저자 토머스 맬서스를 소환한다. 그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는다’는 엉터리 예언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역사를 바꾼 ‘위대한 경제학자’를 꼽을 때 꼭 거론되는 이도 맬서스다. 그는 ‘수요의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하며 “공급은 그 스스로의 수요를 창출한다”는 고전 경제학의 대명제에 반기를 들었다. 뉴딜정책으로 이어진 케인스의 ‘유효수요론’도 맬서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공교롭게도 정부가 코로나 대책으로 들고나온 것이 ‘한국판 뉴딜’이다. 위기의 순간에 ‘한물간 학자’로 인식되는 맬서스에서 아이디어를 구하게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인구론》에서 그는 기하급수적인 인구 문제의 해법을 출산율을 낮추는 ‘예방적 억제’와 전염병·전쟁 등으로 사망률을 높이는 ‘적극적 억제’의 두 가지로 제시했다.

당시에는 ‘냉혹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런 해법에 대한 시각은 오늘날 훨씬 관대하다.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며 진보적 시각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출산율 저하를 ‘개인의 최선의 선택’이라고 보는 생태학적 해석이 대표적이다. 환경 파괴 등 여러 스트레스에 직면한 개체의 자연스러운 조절 반응으로 보는 관점이다. 베일 속 ‘엘리트 그룹’이 세계 인구 감소를 목표로 코로나를 이용한다는 음모론에서도 맬서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런저런 가설이 많지만 급격한 출산율 저하가 복지·재정 위기, 생산력 감소, 지방 소멸 같은 치명적 결과를 부를 것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한국판 뉴딜뿐 아니라 ‘출산율 뉴딜’ 정책도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정부는 무덤덤하다. 저출산 바이러스에 면역이라도 된 것일까.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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