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추심원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 여부에 대해 대법원이 2주 사이에 상반된 판결을 내려 논란을 빚고 있다. 통상 대법원 판례는 분쟁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데도 오락가락하는 판결로 기업 현장의 혼란만 야기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법원 1부는 지난 14일 “채권추심원은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아 퇴직금을 줄 필요가 없다”며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내렸다. 심리불속행은 1·2심 판결로 충분해 더 이상 재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 사건을 종결하는 것이다. 이 판결은 지난달 29일 대법원 3부가 내린 결론과 배치된다. 당시 대법원 3부는 1·2심을 뒤집고 채권추심원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법조계에선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대형 법무법인 노동전문 변호사는 “아무리 각 사건의 개별성을 감안해도 대법원이 2주 만에 정반대의 결론을 내놓은 것인데 판례는 앞으로 일어날 분쟁의 기준점이 된다는 의미도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노동전문 변호사는 "골프장 캐디도 몇번 판결이 엇갈린 적 있지만 대법원이 한차례 정리해줘 혼란이 가라앉지 않았느냐"며 "한 직업군의 공통적인 특성을 추려주고 사업장마다 조금씩 다른것은 부차적인 요소로 가려 정리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대법 "채권추심원은 근로자다"…2주 뒤엔 "아니다"
오락가락 최종심…법조계 "줄소송 불보듯"특수고용근로자의 ‘근로자성’에 대한 판례는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근로자법상 근로자로 인정되는 순간 퇴직금과 최저임금, 법정수당 등을 받을 수 있고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의 적용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채권추심자의 근로자성 판례를 두고 ‘짝짝이 결론’을 내놓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법조계에선 ‘이쪽저쪽 다 판례라는 칼을 쥐여준 셈’이라고 지적한다. 앞으로 소모적인 분쟁과 줄소송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법, 채권추심원 근로자성 다르게 해석그동안 법원 판례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내부 전산시스템을 이용하게 하는 등 업무의 종속성이 있는지 △책임자의 지휘·감독이 있었는지 △실적 관리나 교육을 했는지 등으로 굳어져 왔다. 채권추심원을 근로자로 인정한 판결은 사업장의 근로 조건 등이 이 같은 요건에 충족된다고 봤다. 하지만 또 다른 판결은 같은 기준을 놓고도 2주 만에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채권추심원들은 금융회사나 신용정보기관 등에서 채권자의 위임을 받아 추심(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을 경우 받아내는 일) 업무를 한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달 29일 신용조사업체 A사(피고)가 채권추심원들(원고)로 하여금 회사 내부 전산관리 시스템에 매일 실적 등을 입력하게 했으므로 업무의 종속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피고가 지점장 또는 중간책임자인 팀장 등에게 업무지침을 전달했으므로 실질적인 지휘·감독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적 관리나 교육 여부에 대해서도 “피고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부진한 채권추심원들에 대한 해촉 조치와 같은 대책을 검토했다”며 “영업성 증대를 위한 교육도 정기 또는 수시로 진행했으며 불참자 등에게는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달 14일 채권추심원의 근로자성을 부정한 대법원 1부는 “요건이 일부 충족되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원고들이 피고의 근로자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고 판단한 2심을 확정 지었다. 이 사건의 2심 재판부는 또 다른 신용정보회사 B사(피고)가 채권추심원들(원고)에게 내부 전산시스템을 이용하게 한 것에 대해 “업무의 진행 상황을 최소한으로 파악하기 위한 조치”라고 봤다. 업무의 종속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책임자의 지휘·감독 여부에 대해서도 “피고는 원고들에게 매월 목표 회수율과 약정률을 부여했고 추심 팀장들은 매주 또는 매월 회수 실적을 집계한 후 피고에게 제출했다”면서도 “이는 정식 문서가 아닌 메신저를 통해 제출했을 뿐이며 수수료 액수가 정확한지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실적 관리와 교육 여부도 인정하지 않았다. 피고가 목표율 달성 여부에 따라 원고들에게 수수료를 차등 지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불이익의 정도가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법원 안팎에서는 대법관들의 성향에 따라 판결이 갈렸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채권추심원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대법원 3부는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됐는데, 주심인 민유숙 대법관을 포함한 3명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됐다. 반면 근로자성을 부정한 판결을 내린 대법원 1부는 대법관 3명 중 이기택 대법관(주심)을 포함한 2명이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됐다.
기업들 혼란 우려채권추심원은 근로자성과 관련해 법원 판결이 엇갈려온 대표적인 직업군이다. 그럼에도 최종심이라는 대법원 판결의 상징성을 고려할 때 2주 만에 전혀 다른 판결이 나온 것은 의외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한 신용정보회사의 사내변호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한 번 인정되면 회사로서는 여러 형태의 인력을 운용하는 데 제한을 받게 되고 사업 확장 등에서 경직될 우려가 있다”며 “당장 너도나도 퇴직금을 달라고 할 텐데 누가 근로자에 해당되는지, 아닌지 판결문마다 세부 문구를 분석하면서 추가적인 논의를 해야 할 판”이라고 지적했다.
한 노동전문 변호사는 “소송 당사자의 입증이나 주장 정도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다”면서도 “대법원의 엇갈린 판례는 사건별로 개별적인 요소를 더 중요하게 보겠다는 의미인데 추심원들 당사자뿐 아니라 사업체(기업)에서도 상당한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