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서울회생법원을 비롯한 전국 14개 법원에 접수된 개인·법인 파산, 회생 신청건수가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장기화로 기업이나 자영업자, 개인들의 경제활동이 여의치 않은 점을 고려하면 의외의 결과다. 전문가들은 최근 금융기관들이 채무이행을 촉구하는 추심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는데다, 경제주체들도 최대한 버티면서 파산·회생 신청을 미루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15일 한국경제신문이 채이배 민생당 의원실로부터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전국법원에 접수된 개인 파산과 법인 파산 신청건수는 각각 3942건, 85건으로 집계됐다. 지난 3월과 비교하면 개인은 약 7%, 법인은 약 15% 줄어든 수치다. 전년 동월과 비교해도 약 8%, 20%씩 줄었다.
채무 등을 조정해 주는 회생쪽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접수된 개인회생 신청건수는 7518건으로 전달 대비 5% 감소했다. 법인회생(기업회생) 신청은 총 90건이 접수돼 전달보다 약 12% 늘었지만, 작년 4월과 비교하면 19% 하락했다.
얼핏 보면 경제 상황이 좋아진 것 같지만 업계에선 '폭풍전야'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법조계는 최근 금융기관이 추심활동을 소극적으로 하거나 잘 하지 않았던 덕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 대형 법무법인의 도산전문 변호사는 "보통 4월경 법인들의 대출채권 만기가 도래하곤 하는데 금융권이 이걸 유예 시켜주거나 기한을 연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회생절차는 기존 경영자 입장에선 경영권 상실까지 감수해야 하는 절차여서 신청을 안 하는게 아니라 최대한 버티며 미루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다른 17년차 도산전문 변호사도 시차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외부적인 충격이 파산 등으로 연결되기까지 1년 정도 텀(시차)이 있었다"며 "회사가 투입할 수 있는 돈을 이용해 버티다가 정부나 금융기관의 지원이 줄어들면 회생, 파산으로 점점 돌아서는 식"이라고 말했다. 지난달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 진행되던 시기라는 이유도 제기됐다. 법조계에선 "올 하반기부터 파산 및 회생 신청이 급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법원에 접수된 파산, 회생 신청과 더불어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에 접수된 신용회복신청자 현황도 비슷한 추세를 알 수 있는 지표다. 신복위는 법원와 달리 채무를 조정해주진 않지만, 현 상황의 채무와 부채를 진단해주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등 저렴하게 '급한 불'을 끄는 데 도움을 준다.
다만 신복위 관계자는 "금융위원회의 권고로 작년 하반기부터 관련 통계를 집계하지 않고 있다"며 "개인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예금 및 보험을 해지하는 등 스스로 자구책을 찾다가 결국 해결이 안 돼 신복위를 찾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덧붙였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