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을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만성 직장 스트레스’로 정했다. 의학적 질병은 아니더라도 잘 관리해야 하는 직업 관련 증상으로 인정한 것이다. 충분히 쉬어도 극심한 피로 증상이 6개월 넘게 계속되면 번아웃 증후군으로 정의한다. 정신적 피로 때문에 휴대전화의 배터리가 나간 것처럼 업무나 일상생활을 할 때 무기력감을 호소하는 상태다. 직장인들에게 흔한 번아웃 증후군에 대해 알아봤다.
만성 피로감, 감기 증상 자주 호소
번아웃 증후군은 1974년 미국 심리학자 허버트 프로이덴버거가 ‘상담가들의 소진’이라는 논문에서 처음 사용했다. 홍승권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만성 스트레스가 지속되면서 코르티솔 호르몬과 교감신경이 항진되는 것이 원인”이라고 했다. 그는 “성공 지향적이고 성과 중심인 현대사회에서 과도한 업무량, 스트레스, 부족한 휴식, 영양소가 부족한 식사 등의 원인으로 부신 기능이 떨어져 내분비 호르몬이 바뀌면 생기기 쉽다”고 했다.
번아웃 증후군이 찾아오면 만성 피로감을 호소한다. 아침에 일어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감기와 같은 상기도 감염이 자주 발생한다. 체력도 확 떨어진다. 체중이 이유 없이 줄어들고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관절통도 많이 호소한다. 이처럼 몸에 이상이 생기지만 검사해도 별다른 이상을 찾지 못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우울감, 불면증도 함께 나타난다. 예민해져 화를 쉽게 내고 어지럼증을 호소해 실신하기도 한다.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지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을 보이는 것도 번아웃 증후군 증상이다. 좌절감, 공포감, 강박적 행동을 호소할 가능성도 있다.
명치쪽 뻐근, 설사 변비 반복되기도
번아웃 증후군이 시작되는 초기에는 졸린 증상보다는 쉬고 싶다는 바람이 강하다. 맥박이나 호흡이 빨라지고 식욕이 줄며 심한 불안감을 호소한다. 신체 증상도 흔하다. 명치쪽이 뻐근하거나 긁는 것처럼 불편감을 호소한다. 설사, 변비가 반복되거나 배가 더부룩하고 소화도 잘되지 않는다고 토로하는 환자도 많다.
밤에 잠을 자다가 자주 소변이 마렵고 여성은 생리 전 월경통을 심하게 하기도 한다. 이명도 번아웃 증후군 증상 중 하나다. 짠 음식이나 단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런 증상은 꼭 번아웃 증후군일 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질환이 있을 때도 흔히 호소하는 증상이다. 번아웃 증후군을 가려내기 어려운 이유다.
탈진이나 무기력증을 심하게 호소하기도 한다. 세포가 제 기능을 잘하지 못하고 사이토카인이 많이 분비되면 탈진이 생길 수 있다. 무력증은 오후 늦은 시간에 더욱 심하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어려워하기도 한다. 내분비계에 문제가 생겨 저혈당 증상을 호소하거나 알레르기 반응 때문에 몸속 히스타민 균형이 깨져서다. 저혈압도 원인이 될 수 있다. 가벼운 운동만 해도 극심한 피로를 호소하는 과로 후 전신 무력감이 생기기도 한다.
약물보다 휴식, 명상 등 활용
번아웃 증후군으로 피로 증상을 호소하더라도 이를 계량해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같은 상황에서도 개인마다 느끼는 정도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이런 피로를 평가하는 다양한 지수가 개발됐다. 환자가 질문에 답하는 설문형 평가 방식은 만성피로지수가 가장 많이 쓰인다. 액티그래피라는 장비를 활용해 피로와 신체 활동 간 관계를 평가하는 액티비티레코드도 활용한다.
이런 평가를 통해 번아웃 증후군으로 확인되면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고 휴식하는 등 생활습관을 교정하는 치료를 한다.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부 증상을 개선하는 약물을 복용해도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효과가 떨어질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생활 방식과 생각을 바꾸는 것이 더 근본적인 치료다. 홍 교수는 “환자의 상태에 맞춘 스트레스 관리법으로는 복식호흡, 점진적 근긴장이완법, 바이오피드백, 인지행동요법, 명상 등이 활용된다”고 했다.
편한 장소와 시간 찾아 휴식해야
번아웃 증후군을 예방하는 시작은 스스로 편안한 장소와 시간을 찾는 것이다. 충분히 잠을 자는 것이 중요하다. 잠을 잘 못 자면 부신 호르몬 기능이 떨어진다. 잠자는 환경을 바꾸고 몸의 긴장을 푸는 것이 중요하다.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커피, 술, 음료수, 담배 등 자극적 음식은 삼가는 것이 좋다. 인공감미료 섭취도 삼가야 한다. 면역력을 높이는 멜라토닌 호르몬은 밤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많이 분비된다. 이때는 깊이 잠을 자야 한다.
가벼운 운동을 하면 호흡이 깊어지고 근육이 이완하는 데 도움된다. 혈액이 잘 돌면서 면역계를 자극하는 부교감 신경도 활성화된다. 운동을 하면 몸속에서 면역세포와 림프액이 잘 돌아간다. 운동은 단계에 맞춰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좋다. 번아웃 증후군이 심한 탈진 단계일 때 운동을 하면 오히려 회복을 방해할 위험이 크다. 처음에는 가벼운 운동으로 시작한 뒤 점차 운동 강도와 빈도를 높이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비타민, 마그네슘, 미네랄, 엘카르니틴 등 보조제를 복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칼슘 많은 음식도 도움
칼슘이 많이 든 음식을 먹으면 만성피로 증상을 줄이고 면역력을 높이는 데 좋다. 미국 인체영양연구소에서 10명의 여성에게 39일 동안 칼슘 함량이 다른 네 가지 종류의 식사를 하도록 한 뒤 확인한 연구 결과다. 요구르트나 탈지유를 하루 3컵 반 먹는 등 칼슘을 많이 섭취한 여성은 월경통, 피로감, 무기력감 등의 증상이 줄었다. 몸속 수분도 잘 순환됐다.
단백질과 염분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칼슘 흡수는 오히려 떨어질 위험이 있다. 칼슘 배출이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 단백질 섭취는 체중 1㎏당 2g이 넘지 않도록 유지해야 한다. 술도 칼슘이 흡수되는 것을 방해하고 몸 밖으로 많이 빠져나가도록 한다. 번아웃 증후군이 있다면 음주량을 줄여야 한다.
마그네슘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마그네슘은 탄수화물 대사를 통해 만들어지는 에너지를 저장하거나 방출하는 기능에 영향을 준다. 단백질과 DNA를 합성하는 역할도 한다. 매일 200~400㎎(섭취 권고량 280㎎)을 음식과 함께 먹는 것이 좋다.
공감도 번아웃 증후군 증상을 줄이는 데 약이 된다. 홍 교수는 “충분히 공감해 주는 의료진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무엇이 더 중요한지 우선순위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의료진과 상담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운동이나 명상법을 확인할 수 있다. 스스로 마음가짐을 잘 다스리는 것이 번아웃 증후군 치료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bluesky@hankyung.com
도움말=홍승권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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