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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석 칼럼] "원컨대 일본과 화친을 끊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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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쓰시마섬의 소다(早田) 가문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이 있다. 조선 왕이 내린 교지(敎旨·임명장)다. 조상 중 한 명이 조선의 선략장군(宣略將軍)이란 종4품 관직을 받았다는 증표다. 조선 왕이 일본인에게 벼슬을 내렸다는 게 선뜻 이해가 안 가지만 사실이다. 조선 초 왜구의 침략이 극에 달하자 세종대왕은 왜구 소굴인 쓰시마섬을 정벌했다. 이때 항복한 왜구에게는 관직을 주고 교역을 허락했다. 왜구를 무력만이 아니라 회유로 관리하려는 전략이었다.

틈만 나면 한반도를 침범한 일본에 조선이 강온 전략을 구사한 데는 외교 전문가로 영의정까지 오른 신숙주(1417~1475)의 기여가 컸다. 그는 《해동제국기》에서 일본은 전쟁보다 교린(交隣)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설파했다. 피할 수 없는 이웃이라면 공존하며 이익을 추구하는 게 낫다고 본 것이다.

2000년이 넘는 한·일 관계사를 보면 우호와 적대가 반복됐다. 고대부터 우리가 일본에 불교와 한자, 도자기 등을 전수해줬지만 고려 말~조선 초에는 왜구가 끊임없이 한반도를 약탈했다. 왜구 정벌 후 조선이 삼포(三浦)를 개항하고 일본과의 교역을 도모했으나 임진왜란으로 다시 원수가 됐다. 이후에도 조선은 통신사를 보내고 초량왜관을 설치해 공존을 모색했다.

이런 냉·온탕식 관계는 일본의 식민지배와 해방 후에도 이어졌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두 나라는 경제적으로 협력하고 월드컵까지 공동 개최하면서도 과거사와 독도 문제만 터지면 얼굴을 붉혔다. 한·일의 이런 가깝고도 먼 관계를 두 나라 정치권이 악용한 사례도 있었다. 한·일 관계는 그래서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의 형벌’에 비유되곤 한다.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면 굴러떨어져 다시 밀어 올리기를 무한 반복해야 하는 숙명의 형벌 말이다.

지금은 그 바위가 산 밑바닥에 떨어져 있다. 식민지 시절 강제징용자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 판결로 촉발된 갈등 국면에서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등 경제보복에 나서면서 양국 관계는 나락으로 추락했다. 코로나 사태 와중엔 일본 정부가 중국인과 한국인의 입국금지 조치를 발표하자 우리 정부가 같은 날부터 일본인의 입국을 제한하기로 맞대응하는 등 감정적 대립 단계까지 갔다.

그럼에도 두 나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작년 기준으로 일본은 한국의 3위 수출입 대상국이다. 일본으로서도 한국은 3위 교역국이다. 한국인은 일본에, 일본인은 한국에 각각 두 번째로 비중이 큰 외국 방문객이기도 하다. 산업은 얽히고설켜 있다. 일본산 고순도 불화수소 하나만 없어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돌아가기 어렵고, 삼성 반도체가 없으면 일본의 상당수 공장은 멈출 수밖에 없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미국의 동맹 위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시화되면 한·일 협력은 더 중요해진다. 반일(反日) 프레임만으로는 국익을 지키기 어렵다. 과거사는 직시하되 미래를 향한 윈윈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한·일 두 나라가 요즘 코로나로 곤경에 처해 있다. 지금이 기회다. 방역에서는 이웃 나라 간 공조와 연대가 절실하다. 이때 화해와 협력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마침 코로나 현장에서 피어난 한·일 간 미담은 희망의 불씨처럼 보인다. 인도에서 급성 백혈병에 걸린 다섯 살 어린이 교민 환자의 귀국 비행기편을 구하기 위해 20여 개국에 SOS를 치고 발만 구르던 주(駐)인도 한국대사에게 제일 먼저 “도와주겠다”고 전화한 건 인도 주재 일본대사였다. 앞서 한국도 교민 귀국 전세기에 일본 국민을 태워줬다.

이럴 때 우리가 한발 더 다가가 마스크 지원 등을 전격 제안하면 어떨까. 미국에 마스크 200만 장을 긴급 무상지원했듯이 말이다. K방역으로 높아진 국격에 걸맞게 대범한 접근을 하면 일본도 화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방역 지원에 대가를 기대해선 안 되겠지만 이런 협력이 쌓여 두 나라 간 감정의 골을 메우면 수출규제 철폐도 한·일 통화스와프 체결도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500여 년 전 신숙주는 눈을 감으며 이런 유언을 남겼다. “원컨대 일본과 화친을 끊지 마소서.” 이 유언은 지금도 유효하다.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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