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적 시민환경단체인 환경운동연합은 지난해 74억9726만원의 기부금을 받아 이 중 절반인 38억8637만원을 직원 30명의 인건비로 썼다고 국세청 홈페이지에 공시했다. 공시가 사실이라면 1인당 평균 1억3000만원을 가져갔다는 얘기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지역 지부 직원들까지 합해 총 280명에게 준 금액”이라고 해명했다. ‘돈 받은 인원을 왜 30명이라고 기재했느냐’는 질문에는 “서울 본부에 있는 직원만 대표로 적은 것”이라고 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가 2018년 한 맥줏집에서 3339만여원을 결제했다고 공시해 논란이 된 뒤 “시민단체들의 회계 처리 내역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시민단체는 돈을 어디에 썼는지 상세히 공개할 의무가 있다”며 “사용처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면 돈이 엉뚱한 데 쓰이고 기부가 줄어드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대부분이 ‘부실 공시’12일 국세청에 따르면 기부금 사용 내역을 공개해야 하는 공익법인은 지난해 기준 9663곳이고, 이들이 걷은 기부금은 총 6조3472억원이었다. 이들이 국세청 홈택스에 올려놓은 기부금 지출 내역을 보면 사용처를 ‘사업비’ ‘활동비’ 등으로 기재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일부 시민단체는 아예 사용처를 한 군데도 적지 않았다. 세법 규칙에 따라 공익법인은 연간 100만원 이상 기부금을 사용하면 사용처 및 대상을 밝혀야 하지만 이를 지키는 곳은 참여연대 등 일부에 불과했다.
대표적 구호단체인 유니세프는 지난해 국내 기부금 사용처가 총 12곳이라고 공시했다. 12곳 모두 지급처명은 ‘국내 사업’, 지출 목적은 ‘홍보사업, 모금사업, 일반운영비’라고 적어놨다. 돈을 언제 썼는지는 기재하지 않았고, 지출액은 9억원부터 42억원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유니세프 관계자는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국내 어린이를 지원하지 않아 국외사업에 대해서만 상세하게 공시했다"고 설명했다. 환경단체인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는 지난해 1~11월에는 기부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다가 12월에 7억9100만원을 받았다고 밝힌 뒤 이 돈을 같은 달에 ‘운영 및 캠페인 활동비’로 모두 썼다고 적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을 지낸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회계사)는 “참여연대의 경우 외부 회계사와 변호사를 통해 감사를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단체는 자금난에 시달리다보니 전문적인 회계 인력을 구하기가 힘들다”며 “과세당국이 관리·감독할 유인이 부족하다는 점도 부실 회계가 발생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정의연이 맥줏집에서 3339만여원을 결제했다고 공시하고, 이를 ‘140곳에 쓴 것을 하나로 합쳐 기재한 것’이라고 해명한 데 대해서는 “잘못한 것인데 왜 적반하장으로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용처 물으면 “왜 캐묻나”국내 시민단체들은 2017년 12월 ‘기부자의 알 권리 헌장’을 채택했다. 기부자는 자신의 기부금이 목적사업에 맞게 사용됐는지, 단체가 모금된 자원의 효율적 관리와 사용을 할 역량이 있는지 등을 알 권리가 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이 헌장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느끼는 기부자가 많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사회 환원을 위해 매년 수억원을 기부하고 있지만 이 돈이 제대로 쓰이는지 알 방법이 없다”며 “시민단체에 사용처를 물으면 ‘왜 캐묻냐’ ‘그런 것까지 대기업이 간섭한다’ 등의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회계 관리가 잘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술집에서 3300여만원을 결제했다고 처리할 정도로 허술한지는 몰랐다”고 했다.
일본 시민단체들은 휴대폰 요금, 렌터카 비용까지 공개하는 등 투명한 회계처리로 유명하다. 일본 구호단체인 라이트하우스는 아르바이트생 급여, 신문 구독료, 통신비, 인쇄료까지 공개하고 있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면 점점 치열해지는 기부금 유치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2016년 벌인 실태조사에서 정보공개의 기준에 미달한 시민단체의 81.8%가 기부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는 “시민단체는 당장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쌓여 있어 투명성이 덜 중요하다는 인식이 많다”며 “이제는 기부금 사용 내역 등을 정직하게 밝히는 게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훈·정지은·김남영 기자/도쿄=정영효 특파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