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법인주택 거래에 칼을 빼든 이유는 이들 거래가 투기나 탈세의 창구로 활용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수도권 비규제지역으로 법인투자가 몰리면서 일부 지역의 집값 급등을 부추기는 등 시장 질서를 교란시킨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가 지역과 시세에 관계없이 모든 법인주택 거래에 대해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면서 감시 대상을 전국으로 확대한 이유다.
수도권 비규제지역 법인 거래 조사국토교통부는 11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투기적 법인주택 거래 대응 방안’을 내놓으면서 수도권 경기남부 지역을 정조준했다. 경기 안산 단원·상록구, 시흥, 화성, 평택, 군포, 오산과 인천 서·연수구 등이다. 작년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풍선효과’를 보인 곳들이다.
이상 거래는 △본인이 임원으로 있는 법인에 주택 매도 △미성년자의 주택 매수 △외지인의 빈번한 다른 시·도 주택 매수 등이다. 투기적 매매가 의심되는 거래는 탈세와 대출 규정 위반 여부를 집중 조사받는다.
국토부는 특히 규제지역에 대한 법인 대출규제가 담보인정비율(LTV) 40%로 강화된 작년 10월 1일 이후 거래 중 잔금 납부가 완료된 건들을 들여다볼 방침이다. 조사 결과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국세청 세무조사 등의 후속 조치가 이뤄진다.
부동산업계에서 법인 부동산 거래는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를 모두 아낄 수 있는 묘수로 통했다. 개인으로 몰리는 주택 수를 법인으로 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아파트를 팔면 보유 및 거주기간과 양도 차익 등에 따라 6~42%의 양도세율이 적용된다. 반면 법인은 보유기간과 상관없이 10~22%의 법인세를 납부하면 된다. 개인과 법인으로 종부세 납부 대상이 나뉘기 때문에 세 부담도 덜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일부 지역에서 법인 아파트 매수 비중이 최근 급격하게 증가했다. 인천의 법인 아파트 매수 비중은 작년 평균 1.7%에서 지난 3월 11.3%로 10배가량 껑충 뛰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인천은 올 들어 아파트 매매가격이 전국 최고 수준인 4.5% 상승했다.
부동산 매매업 및 임대업 법인 설립도 계속 늘고 있다. 매매 법인은 2018년 6~12월 2만6000여 개가 설립됐지만, 작년 같은 기간에는 3만3000개로 증가했다.
법인 자금조달계획서 의무화현재 규제지역에서는 3억원 이상, 비규제지역에선 6억원 이상의 집을 매수할 때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법인은 지역과 거래가액에 상관없이 자금조달계획서 제출을 의무화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비규제지역의 경우 대부분 거래가액이 6억원 미만인데 이에 대한 자금조달계획서를 받을 수 없어 조사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1~4월 비규제지역 6억원 미만 주택거래 비중은 안산 단원 98.0%, 화성 93.4%, 인천 서구 98.1% 등이다.
국토부는 이와 함께 법인용 실거래 신고서를 별도로 마련한다. 법인용 실거래 신고서에는 자본금·업종·임원 등 법인에 대한 기본정보와 주택 구입 목적, 거래당사자 간 특수관계(친족) 여부 등이 추가된다. 지금은 단일 신고서식을 개인과 법인 모두 사용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부동산거래신고법령 개정안을 마련해 이달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관련 절차를 거친 뒤 오는 7~8월 시행할 방침이다.
이번 대책은 일반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인의 탈을 쓴 개인 투자자들의 편법 거래를 적발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일반 기업들이 투기적 주택 거래를 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