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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자명종이 왜 거기서 나와?…이념 벗은 조선후기 정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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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책은 물론이요 일상의 집기까지도 모두 중국산 제품을 사용해 이것으로 고상함을 뽐내려 한다. 먹, 병풍, 붓걸이, 의자, 탁자, 정이(고대의 제기), 준합(술통) 등 갖가지 기괴한 물건들을 좌우에 펼쳐두고 차를 마시고 향을 피우며 고아한 태를 내려고 애쓰는 모습은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다.’

조선 정조는 문집 ‘홍재전서’에서 당시 사대부들의 사치풍조를 이렇게 비판했다. 정조가 언급한 물건들이 나오는 그림이 바로 책, 벼루, 먹, 붓, 붓꽂이, 두루마리꽂이 따위의 문방구류를 그린 조선 후기의 정물화 ‘책거리’ 혹은 ‘책가도’다.

《세계를 담은 조선의 정물화 책거리》의 저자는 정조와 달리 책거리에 담긴 풍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문치국가였던 조선이 정신문화만을 강조했던 초기와 달리 후기에 접어들면서 물질문화에 대한 욕망이 싹트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는 것. 책거리에는 청나라에서 들여온 화려한 도자기, 대항해 시대 서양의 무역선을 타고 온 자명종, 회중시계, 안경, 거울 등이 등장한다. 이는 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까지 네 차례의 전쟁을 겪으면서 현실적·실용적으로 바뀐 조선후기의 세계관을 반영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궁중화부터 민화까지 책거리에 등장하는 중국과 서양 물건들을 톺아 나간다. 15세기 이탈리아 귀족의 서재 ‘스투디올로’에서 시작해 16세기 유럽의 ‘호기심의 방’을 거쳐 17세기 중국의 ‘다보격(多寶格)’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조선으로 전해져 책거리 문화를 이뤘다며 이를 ‘북로드’라고 이름했다. 저자가 책거리를 ‘세계를 담은 정물화’라고 부르는 이유다. (정병모 지음, 다할미디어, 300쪽, 2만원)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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