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매체가 선정한 가장 안전한 여행지.’ ‘세계경제포럼 관광경쟁력 5위 국가.’
국내 한 관광전문가가 바라본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관광의 위상이다. 이런 일이 가능할까. 업계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한국관광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지만, 해묵은 문제들을 차분히 돌아볼 시간을 벌어준 측면도 있다. 게다가 ‘세이프 코리아’의 이미지가 여느 때보다 높다. 한국의 격(格)을 높일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입을 모은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과 교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에 불과한 관광산업 비중을 10%로 올릴 수 있는 관광한국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가심비’ ‘안전’ 한국관광으로 퀀텀 점프를한국의 관광 인프라가 발전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지역 저변의 품질까지 높아졌다고 자신하지는 못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외국인에게 한국의 구석구석은 아직도 1970~1980년대의 ‘3불(不) 코리아’를 연상케 한다. 불통, 불편, 불친절이다. 한국의 지방도시로 나홀로 여행을 간 나가사와 유즈루 씨(34)의 경험은 특별한 소수의 얘기가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고속철 예약이 불가능한 건 참을 만했다. 대중교통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다는 건 고통이었다. 표지판이나 노선도에 일본어 표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가사와 씨는 “한국은 외국인이 혼자 지방도시를 여행가기는 어려운 나라”라고 꼬집었다.
한 필리핀 여행객이 겪은 일화는 얼굴을 화끈거리게 한다. “지방 대리점에서 고가의 가전제품을 사서 나오자 등 뒤에서 ‘불법 체류로 돈 좀 벌었나 봐’라는 말이 꽂혔다.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이 안 가는데 외국인 보고 오라고?일본은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을 만하다. 2012년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한국(1114만 명)에 비해 278만 명이나 적은 836만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5년(한국1323만 명, 일본 1974만 명)을 기점으로 한국을 추월해 2019년에는 3190만 명으로 증가했다. 우리의 거의 두 배다. 세계경제포럼이 140여 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국가별 관광산업 경쟁력 순위는 지난해 한국이 16위인 데 비해 일본은 아시아에서 1위였고 세계적으로는 4위였다. 미국(5위) 영국(6위) 이탈리아(8위) 등을 모두 앞질렀다.
일본은 관광 최우선 정책을 펼쳤다. 부처별로 관광예산이 흩어져 있는 한국과 달리 교통부 산하 관광청이 모든 예산을 틀어쥐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더 결정적인 건 따로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자국 여행, ‘인트라바운드’ 관광의 부흥이다. 고령화와 인구감소 문제가 심각해지자 일본 지방자치단체들도 관광에 사활을 걸었다. 지방마다 독특한 볼거리와 개성 강한 음식,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세계 1위의 스토리텔링형 관광 인프라가 태어났다. 이훈 교수는 “일본인들은 굳이 해외여행을 가지 않아도 내국 여행만으로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규제 혁파, 이제는 속도전이 생명프랑스의 샤모니, 스위스의 체르마트, 독일의 뵈리스호펜의 공통분모는 세계적 산악 관광지라는 점이다. 샤모니의 경우 지역 주민 수 1만 명에 연간 관광객이 180만 명에 이르고 체르마트는 주민 수 6000명에 관광객 130만 명, 뵈리스호펜은 주민 수 1만5000명에 관광객이 100만 명이다. 한국은 국토의 70%가 산인데도 산악관광 활성화가 어려웠다. 경사도에 따라 산지전용이 금지됐고, 토지이용변경 등 행위 제한 등 각종 규제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내 등산 애호가들은 높은 경쟁률을 거쳐 대피소에 예약하거나 새벽이나 야간 산행을 무리하게 감행하는 사례가 많았다. 숙박 문제는 여성과 외국 등산가들이 정상등반을 기피하는 요인 중 하나다.
정부는 산림 관광 활성화를 위해 산림휴양관광진흥구역법(가칭)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속도다. 공유숙박업체가 내국인 상대 영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지만, 코로나19로 공유개념이 ‘위험’으로 바뀌면서 이미 업계가 초토화된 마당이라 ‘만시지탄’이란 비판이 나온다. 에어비앤비는 조만간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서원석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교수 “관광업은 전염병이나 정치적 상황, 환율 등에도 쉽게 출렁거릴 정도로 체질이 약하다”며 “규제는 제때, 과감하게 그리고 확실히 혁파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