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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운 여름날의 교실 안. 교탁 앞부터 책상들이 줄지어 서 있다. 50명 넘는 학생들로 빽빽하다. 교실 안에선 선생님이 분필로 필기하는 소리만 들린다. 중요한 키워드를 적은 보라색 형광색 분필이 눈에 띈다. 맨 뒷자리에 앉은 까까머리 학생의 얼굴엔 미소가 번진다.
언뜻보면 우리나라의 1970년대 교실 같지만, 현재 아프리카 토고에서 교실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토고 교실 곳곳엔 현재 한국의 세종몰이 공급하는 하고로모 분필이 있다.
신형석 세종몰 대표는 지난달 20일 한경닷컴 산업부와의 인터뷰에서 "부산에 있는 선생님이 분필 색을 보고 감동해서 교류했던 아프리카 토고 학교에 보내달라고 요청해왔다"며 "선생님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해 무료로 보내드렸는데, 현지에선 멀리서도 잘 보인다며 사진까지 보내왔다"고 밝혔다.
세종몰은 지난 2015년 일본에서 명품 분필로 불린 '하고로모' 분필을 인수했다. 1932년 세워진 하고로모문구는 분필만 전문으로 생산한 회사다.
수학 선생님이던 신 대표는 10여년 전 하고로모 분필을 처음 접하고, 직접 국내 유통을 시작했다. 형광색 분필을 사용하다보니 학생들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었고, 다른 선생님들의 수요도 많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다 하고로모문구를 운영하는 와타나베 사장의 건강 악화로 회사가 폐업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신 대표는 하고로모 이름을 계속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인수했다.
일본 현지에서 기계를 직접 들여와 균일한 품질을 만들고 있다. 신 대표는 "일본 현지에서 3개월 정도 기술을 배웠지만, 나중에 기계적 결함이 생길 것으로 우려됐다"며 "이에 하고로모문구에 있던 재일교포 3세 직원을 아예 한국으로 데려왔다"며 "균일한 품질을 만들기 위해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고 밝혔다.
신 대표는 하고로모 분필의 품질에 대해 "써본 사람은 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하고로모 분필은 필기감이 부드럽고, 표면엔 코팅이 돼 있어서 손에도 묻어나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치약과 같은 탄산칼슘을 사용해 인체에도 무해하다.
그는 "일반 분필은 석고분필이라서 가루가 많이 나오지만, 하고로모 분필은 탄산칼슘으로 공중에 입자가 날리더라도 무거워서 떨어지게 된다"며 "폐나 허파까지 가루가 들어갈 수 없다는 점에서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이 하고로모를 사들였다는 소식은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들에게까지 닿았다.
교수들의 구매 러브콜이 세종몰에 이어지면서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아마존까지 진출하게 됐다. 그는 "미국 교수님들이 직접 회사로 메일을 보내 주문을 받았는데, 카드결제 등을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아마존에 입점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2016년부터 아마존 판매를 시작했다. 당시 아마존에선 하고로모 분필이 사라진다는 소식에 사재기한 사람들이 30배가 넘는 가격에 되팔고 있었다. 이들 판매자들이 오히려 세종몰을 두고 가짜라고 문제제기를 하면서 판매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신 대표는 "아마존에 와타나베 회장과 사진을 찍은 것, 직접 상표 등을 전달해 인수했다는 증빙을 하니 다시 판매가 가능하게 됐다"며 "우리 제품을 아마존에 올려놓으니까 30~40만원에 팔던 재판매자들은 10만원대까지 가격을 낮춘 뒤 나중엔 떨이로 팔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매출액 20억원 중 해외 매출 비중은 40% 정도다. 미국 비중이 가장 높고 중국과 일본 유럽 순으로 높은 편이다. 한국에 인수한 후 첫 1년 매출은 4~5억원 수준이었지만, 5년 만에 4배 가량 몸집을 키웠다.
◆ 세종몰, 하고로모 인수후 '고급화' 박차
이처럼 세종몰이 하고로모 매출을 확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고급화에 있다. 분필의 품질이 우수한 만큼, 이에 걸맞는 패키지도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분필을 담은 기본 박스엔 금박을 넣고 볼록 튀어나온 부분도 넣어 고급스러움을 더했다는 게 특징이다.
그는 "아이폰을 보면 패키지가 아깝다는 말이 나오는 만큼, 하고로모를 인수할 때 고급품질에 적합한 포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며 "다른 분필회사와 다르게 포장지도 비싸지만 단단하게 만든 이유"라고 설명했다.
또 제품 개발에 나섰다. 기존의 형광색 분필은 5가지 색깔이었지만, 보라색 형광색 분필도 추가로 만들었다. 신 대표는 "보라색을 좋아하는 학교 선생님이 6개월 간이나 요청하면서 2년 전 보라색 분필도 만들었다"며 "색약인 친구들이 색깔을 잘 볼 수 있도록 보라색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대학 교수들의 선물용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신 대표는 "스탠포드 물리학과 교수의 사모님이 교수의 정년퇴임 때 작게 모임을 여는데 하고로모 분필을 동료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며 메일을 보내왔다"며 "당시 아마존에선 플라스틱 케이스와 분필을 따로 파는데 직접 300개 정도 보내달라고 요청해서, 분필 5개를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아 직접 보내고 케이스값은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 베트남 부모들도 '호평'…첫날 모두 팔려
하고로모의 판매처도 동남아로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2017년 베트남 호치민의 '국제 베이비&키즈페어' 전시회에도 참가했다.
세종몰은 전시회에 분필&칠판 놀이세트를 들고 갔다. 종이로 된 칠판과 하고로모 분필, 지우개가 들어가 있는 세트 가격은 25만동(한화 약 1만3000원)으로 책정했다. 베트남 물가를 감안하면 비싼 수준이었다. 전시회에서 통역을 돕던 학생도 "25만동이면 외식을 몇 번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안 살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전시회 첫 날 정오가 되자 준비했던 4일치 물량이 모두 팔려나갔다. 그는 "아이들이 직접 하고로모 분필을 써보고 사달라고 하니까 부모들이 지갑을 열었다"며 "선물용으로 여러 개를 사가는 손님도 있을 정도였다"고 밝혔다.
신 대표는 "현재 베트남은 한 가구당 애들이 1~2명 정도로, 우리나라 1970~1980년대처럼 교육열이 높다"며 "베트남 전시회에 총 2번 나갔는데 모두 호응을 얻어, 동남아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기회"라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큰 문구전시회인 '페이퍼월드(Paperworld)'엔 매년 나섰다. 페이퍼월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다. 신 대표는 "올해 1월에도 전시회에 나갔는데, 현장에서 에이전시와 학교들과 계약을 많이 하고 왔다"며 "유럽에서도 형광 분필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고 밝혔다. 유럽 현지에서 하고로모 72개 세트는 3만8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유럽도 아마존을 통해 판매를 전개하고 있다. '
유럽 판매에선 페이오니아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영국의 경우 관세청에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데, 여기서 페이오니아의 시스템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며 "은행에 가지 않고도 바로 대금을 나가는 구조라 편리하게 해결했다"고 밝혔다.
◆ 중국 칭화대·베이징대 교수들도 '주문'...일본 직수출도 재개
하고로모는 중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의 분필 시장은 치열하다. 우리나라 업체도 중국에 따로 해외 지사를 두고 있고,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 생산한 싼 분필도 많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 바이어가 하고로모 분필을 어떻게 판매할 지 고민이 많아서 품질은 좋으니 샘플을 만들어 교수들에게 뿌려보라고 권했다"며 "분필을 써 본 베이징대 칭화대 교수들이 주문했다"고 밝혔다.
신 대표는 "한자가 특히 구부러지는 글자가 많은데 다른 분필은 부러지지만, 하고로모 분필은 부드럽게 잘 써진다는 게 장점"이라며 "중국에선 한 소비자가 하고로모 분필을 먹으면서 '아무 맛도 나지 않는데 먹어도 안전하다'라고 영상을 올릴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밝혔다. 하고로모는 음식 등급보다 높은 화장품 등급을 책정했다. 현재 하고로모 분필은 미국에 이어 중국에서 가장 많은 매출이 나오고 있다.
올해 세종몰은 하고로모 일본 직수출도 전개할 예정이다. 하고로모를 인수할 당시 5년간 일본에서 직접 판매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일본 분필협회가 한국에서 하고로모를 가져가서 다시 들어오면 다 망한다는 생각에 반발해, 5년 동안 일본에 직접 팔 수 없는 조항을 담았다"며 "그간 일본엔 아마존을 통해서만 판매했는데 직접 수출하면 이익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분필 사용 확대 위해 '원더보드' 제작…단가 낮춰 글로벌 '확대'
세종몰은 분필의 사용처도 확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분필의 사용처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최근 세종몰은 원더보드를 만들었다. 가정이나 회사에서 칠판을 붙여서 사용할 수 있는 용도다. 중국 업체를 통해 만들어 놓았지만, 코로나19 확산에 본격적인 판매 시기는 미뤄둔 상태다.
그는 "분필의 사용처를 넓혀야 겠다는 생각에 원더보드는 2~3년 간의 준비를 거쳐 만들게 됐다"며 "철가루 파우더를 집어넣어 유리창에도 쉽게 붙는 구조로, 해외 전시회에서도 선보였는데 해외 바이어들도 호평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세종몰은 하고로모의 가격을 좀 더 낮출 계획이다. 해외에서 판매처를 더 확대하기 위해서다. 아프리카 토고로 날아간 분필은 남아공까지 입소문이 났다. 신 대표는 "남아공에서도 분필 주문이 들어왔지만 원하는 가격 수준이 너무 낮아서 보낼 수가 없었다"며 "기계를 더 현대화해서, 가격 단가를 낮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교육이 강화되고 있지만 칠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신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디지털 교육이라고 해서 칠판을 없애고 디지털 스크린으로 진행하는 교육 방식도 나오고 있다"며 "하지만 디지털 교육은 눈 피로도가 가중된다는 점에서 칠판은 계속 쓰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스탠포드나 하버드에서도 아직까지 녹색 칠판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기존 분필과의 차별화 전략은 이어갈 계획이다. 분필에 들어가는 하고로모 로고 대신 학교나 학원, 선생님의 이름을 넣어주는 서비스를 도입할 계획이다.
세종몰은 하고로모 분필을 통해 종합 문구회사로 도약하는 게 목표다. 그는 "분필을 비롯해 파스텔과 크레파스 등 연관된 제품을 만들어 종합 문구회사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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