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보험’이 손해보험업계의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운전자보험은 차를 몰다가 사고를 냈을 때 벌금, 합의금, 변호사 선임비 등을 주는 보험이다. 경쟁에 불이 붙은 계기는 지난 3월 25일 시행된 ‘민식이법’(도로교통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 이 법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운전자 부주의로 어린이를 숨지거나 다치게 하면 가중 처벌하는 것이 핵심이다. 불안감이 커진 운전자를 겨냥해 보험사들은 가격을 낮추고 보장범위를 넓히면서 판매 경쟁에 나섰다.
○스쿨존 벌금 한도 일제히 상향5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손해보험사는 운전자보험의 보장범위를 일제히 확대했다. 삼성화재, 현대해상, KB손해보험, D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한화손해보험 등은 벌금 최대 보장 한도를 기존 2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높였다. 운전자보험은 이들 6개 업체의 점유율이 95%를 넘는다.
KB손해보험의 신상품 ‘KB운전자보험과 안전하게 사는 이야기’는 출시 12일 만에 10만 건 넘게 팔렸다. 자동차사고로 부상등급 1~7급 상해를 입으면 이전까지 낸 보장보험료를 돌려준다는 점을 내세웠다. 삼성화재는 운전자보험에서 뇌출혈, 장기손상을 보장하고 골프보험 기능까지 추가할 수 있도록 했다. DB손해보험의 ‘참좋은 운전자보험’도 민식이법 시행 이후 20일 동안 16만 건 이상 판매됐다. 업계 최초로 전치 6주 미만 사고에도 형사합의금을 준다.
민식이법에 따라 스쿨존에서 시속 30㎞ 넘게 달리거나 어린이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다가 사고를 내면 처벌 수위가 높아졌다. 상해 사고는 1~15년 징역 또는 500만~3000만원 벌금에, 사망 사고는 벌금 없이 최소 3년 이상부터 무기징역에 처해진다. 운전자로서는 ‘과실 없음’을 입증하지 않는 이상 처벌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월 990원 상품도 등장차를 사면 무조건 가입해야 하는 자동차보험과 달리 운전자보험은 의무가입 대상은 아니다. 자동차보험은 민사상 책임(대인·대물배상)을 보장하는 반면 운전자보험은 형사적 책임에 초점을 맞춘 상품이다. 통상 벌금 외에도 합의금은 1억원, 변호사 선임비는 500만원 안팎까지 준다. 보장한도를 최대한 ‘빵빵하게’ 채워도 월 보험료가 1만~2만원을 넘지 않는 게 보통이다.
후발업체들은 가격 부담을 더 낮춘 운전자보험을 내놓고 있다. 캐롯손해보험은 연령과 성별에 관계없이 월 990원만 받는 운전자보험을 출시했다. 한화손해보험은 월 2500원, MG손해보험은 월 2900원짜리 상품을 선보였다. 설계사를 끼지 않는 다이렉트(인터넷 판매 전용) 상품이다. 에이스손해보험은 핀테크 앱 ‘토스’를 통해 1년치 보험료 2만원대의 운전자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다만 가격이 저렴할수록 보장범위나 금액도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최악의 상황에 철통같이 대비하고 싶다면 월 1만원 정도로 설계하는 것이 무난하다”고 조언했다.
○‘가성비’ 따진다면 車보험 특약운전자보험을 따로 들지 않고 자동차보험에서 ‘법률 지원 특약’을 추가하는 방법도 있다. 이 특약을 넣으면 운전자보험보다 저렴한 값에 벌금과 변호사 선임비 등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보장 한도는 상대적으로 작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보험에 특약을 추가해 비용을 아낄지, 운전자보험에 별도 가입해 보장을 강화할지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했다.
운전자보험은 1984년 국내에 처음 등장해 수백만 명이 가입했다. 가격이 싸지만 적자는 잘 나지 않아 보험사엔 쏠쏠한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로 꼽힌다. 일부 영업 현장에서는 기존 운전자보험 가입자에게 보장 한도가 늘어난 신상품으로 ‘갈아타기’를 권하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도 벌금 최대 한도까지 보험금이 지급된 사례는 드물었다”며 “득실을 꼼꼼히 따져보고 신중하게 선택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