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 기업 주가는 비슷한 업종의 글로벌 기업보다 싼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오랜 기간 사용된 단어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한국 기업들이 저평가됐던 이유는 다양하다.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안보 위험,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리가 먼 후진적 관행, 전투적 노동운동 등이 결합돼 한국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게 정설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없다코리아 디스카운트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수출 중소기업이다. ‘국산’이란 꼬리표가 비즈니스에 이렇다 할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 브랜드에 편승해 ‘기술력’ ‘명품’ 등의 이미지를 구축한 독일과 이탈리아 기업의 스토리는 말 그대로 다른 나라 얘기였다.
상황이 바뀐 것은 4~5년 전부터다. 한류 열풍으로 한국을 긍정적으로 보는 글로벌 소비자가 조금씩 늘어났다. 올 들어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변수가 더해졌다. 한국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선진사회 시스템을 가장 잘 갖춘 나라’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새롭게 얻었다.
벌써부터 기업들 사이에선 ‘코리아 프리미엄’이란 말이 나온다. 생산품의 70%를 러시아와 중동, 동남아시아 등에 수출하는 중견 가전업체 원봉이 대표적 사례다. 이 회사는 5년 전부터 중동 바이어의 요청으로 정수기와 냉온수기, 공기청정기 등 일부 수출품에 태극기 문양을 넣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라는 원산지 마크도 제품 구석이 아니라 전면에 붙였다.
원봉의 ‘코리아 마케팅’은 코로나19 이후 한층 활발해졌다. 러시아와 이집트,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에 판매하는 제품엔 ‘한국’이란 글자도 한글로 들어간다. 수입 업체에서도 코리아 마케팅을 반기는 분위기다. 회사 관계자는 “현지 고객사 중에선 제품을 수입한 뒤 별도로 태극기 도안 등을 제작해 부착한 곳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원봉의 공기청정기 판매는 올해 1분기 정점을 찍었다.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가량 늘었다. 창업자인 김영돈 회장은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1987년 섬유 무역업에 뛰어들었을 때만 해도 한국산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스티커로 ‘메이드 인 코리아’를 붙이고 현지에서는 뗄 수 있도록 했다”며 “지금은 한국산이라면 30% 이상 값을 더 쳐준다”고 말했다.
‘굴뚝 기업’의 재발견코로나19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분야에선 ‘코리아 프리미엄’이 더 크다. 패브릭타임과 다이텍연구원은 지난달 방호복에 쓰이는 부직포를 대체하는 직물원단 50만 야드(457.2㎞)를 미국 뉴욕주 병원복 제작업체에 판매했다. 거래상대와의 만남 없이 일사천리로 계약이 이뤄진 ‘비대면 수출’이었다.
‘방역 강국’이란 명성 덕에 현지에서 먼저 ‘SOS’ 요청이 들어왔다. 처음 연락을 받은 곳은 원단 수출 플랫폼 기업인 패브릭타임이다. 이 회사는 부직포의 대체재를 찾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다이텍연구원에 도움을 청했다. 미국의 시험규격을 알고 있던 다이텍연구원은 곧바로 대체 소재를 개발했고 패브릭타임을 통해 미국으로 물건을 보냈다. 대체 소재 개발과 계약, 납품 등에 걸린 시간은 딱 1주일이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달라진 것이 또 있다. 사양산업으로 분류됐던 제조업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등은 제조 대기업이 위기에 강하다는 것을 1분기 ‘깜짝 실적’으로 증명했다. 기술 수준뿐 아니라 위기 관리 능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소 제조업체에 대한 평가 역시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달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제가 그나마 이 정도로 버티고 있는 것은 국가 경제에서 제조업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이들의 역량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십 만 제조회사와 종사자들에게 ‘우리들의 숨은 영웅’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남은 과제도 있다. 국내 제조업체들이 ‘코리아 프리미엄’을 온전히 누리려면 기술, 품질, 디자인 등에 대한 투자가 더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나경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기업에 대한 ‘호의’를 ‘팬심’으로 바꾸려면 글로벌 경쟁력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며 “결국 기업에 대한 평가는 제품력이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송형석/노경목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