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향후 3개년 북한인권 증진 계획에 ‘북한의 수용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방침을 명시했다. 그간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인권 개선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있었지만 정부가 이 같은 근거를 공식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 스스로 북한인권법의 유명무실화를 자초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통일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제2차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2020~2022년)’에 따르면 이번 계획의 ‘비전과 목표’에는 ‘북한인권 문제는 상대방이 있는 만큼, 실질적 개선을 위해 북한의 수용 가능성, 남북관계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북한인권 개선의 성과 창출을 위해 대화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한 보다 실효적인 방법을 강구’ 등의 문구가 담겼다.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7년 4월 확정된 ‘제1차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2017~2019년)에는 없던 내용이다. 1차 계획엔 '북한 당국이 보편적 가치와 국제규범에 따라 인권 보호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주민에 대한 인권 침해 행위를 중단하도록 하고, 인권·민생 친화적인 방향으로 법·제도를 개선해 실질적 인권 개선에 호응해 나오도록 유도한다'는 내용이 목표로 제시됐었다.
이번 계획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이행 지원 등을 통한 북한주민의 삶의 질 제고 추진’이라는 내용도 추가됐다. SDGs란 성평등, 질병, 기후변화 등 국제사회가 공동 해결을 목표로 하는 인류의 보편적 문제를 말한다. 국제인권조사기록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의 이영환 대표는 “대북지원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SDGs라는 인류보편의 기준까지 갖다붙인 꼴”이라며 “4·15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한 이후 황당한 정책들이 노골화되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은 3년 단위로 통일부 장관이 북한인권법에 따라 북한주민의 인권과 보호·증진을 위해 정책 목표·추진방향·과제 등을 담아 수립하도록 돼있다. 국회에 제출한 시점이 지난 22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부는 이례적으로 브리핑이나 보도자료에서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을 제출한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올해의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담은 2020년도 북한인권증진집행계획은 현재 수립 중에 있다"며 "북한인권 증진정책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해, 5월 중 올해 집행계획을 수립하는대로 제2차 기본계획과 함께 설명할 계획이었다"고 설명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