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만 72세인 오거돈 부산시장이 20대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23일 자진사퇴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코로나19로 많은 부산 시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오 시장이 딸뻘도 아닌 손녀뻘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에 따르면 오 시장은 지난 7일 오전 11시40분쯤 자신의 집무실에 해당 여직원을 불러 약 5분간 성추행을 했다. 여직원은 저항하다 울면서 집무실을 뛰쳐나왔고 이후 부산성폭력상담소에 신고했다.
한 네티즌은 이 같은 사실을 지적하며 "n번방보다 시장방이 더 위험했다"고 비꼬았다.
오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강제 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중에 관계없이 용서받을 수 없다" 등 마치 신체접촉은 있었지만 추행 의도는 없었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이에 오 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부산시 공무원 A씨는 직접 입장문을 내고 반발했다.
A씨는 "오 시장 기자회견문 일부 문구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오 시장의 회견으로 제가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비칠까 두렵다"면서 "그것(오 시장의 신체접촉)은 명백한 성추행이었고, 법적 처벌을 받는 성범죄였다. 이를 우려해 입장문의 내용을 사전에 확인하겠다는 의견을 수차례 타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한 네티즌은 "광역단체장과 20대 여성공무원이 업무상 단독면담을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오 시장이 평소 A씨를 눈여겨보다 계획적으로 성추행한 것이 분명하다"며 "대담한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볼 때 피해를 당한 여성 공무원이 더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오 시장은 지난해에도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해 제기된 의혹이 사실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오 시장은 성추행 뒤 측근을 통해 피해자를 회유하고 목격자가 없다며 성추행 사실을 부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 시장은 이달 말까지 사퇴하지 않으면 폭로하겠다는 피해자의 최후통첩을 받은 뒤에야 사퇴를 선언했다.
오 시장은 성추행 다음날 SNS를 통해 여성의 행복을 응원한 사실이 알려져 더욱 큰 공분을 사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달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페이스북에 "여성 한 명 한 명의 행복이 곧 부산의 행복"이라며 "모든 여성이 꿈을 포기하지 않게 노력하겠다”고 썼다.
네티즌들은 "위선의 끝판왕"이라며 오 시장을 비판했다.
부산 시민이라는 한 네티즌은 "겨우 이러려고 부산시장에 계속 도전했던 것이냐. 부산 시민들이 겨우 지역주의를 깨고 마음을 열어줬는데 실망스럽다"라고 비판했다.
오 시장은 진보진영 인사지만 지역주의 벽을 허물고자 보수 텃밭인 부산에 연이어 출마해왔다. 결국 3전4기 만인 지난 2018년 당선됐다.
일부 네티즌들은 그동안 여권에서 성추문이 연일 이어졌던 사실을 지적하며 '더불어민주당'을 '더불어미투당'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대표적으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 정봉주 전 의원, 민병두 의원 등이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의혹에 휘말렸다. 안 전 지사는 해당 의혹으로 구속까지 됐고, 정 전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를 포기해야 했다. 민 의원은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가 철회해 야권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지난해 12월에는 '내연녀 폭행·감금' 의혹으로 민주당 성남 시의원이 자진 사퇴했고, 1월에는 민주당 2호 영입 인사인 원종건(27) 씨의 '미투 의혹'이 제기됐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다음은 오거돈 부산시장 성추행 피해자 A씨 입장문저는 오거돈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여느 사람들과 같이 평범한 사람입니다. 월급날과 휴가를 기다리면서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평범’, ‘보통’이라는 말의 가치를 이제야 느낍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번 사건으로 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경위를 말씀드립니다. 저는 이달 초 오거돈 전 시장 수행비서의 호출을 받았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업무 시간이었고, 업무상 호출이라는 말에 서둘러 집무실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오늘 오 전 시장의 기자회견문 일부 문구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그것은 명백한 성추행이었고, 법적 처벌을 받는 성범죄였습니다. ‘강제 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중에 관계없이’ 등의 표현으로 되레 제가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비칠까 두렵습니다.
이를 우려해 입장문의 내용을 사전에 확인하겠다는 의견을 수차례 타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기자회견도 예상치 못한 시간에 갑작스레 이뤄졌습니다. 두 번 다시 이 같은 표현이 등장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성범죄 예방과 2차 피해 방지에 대한 부산시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합니다.
사건 직후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무서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벌써부터 진행 중인 제 신상털이와 어처구니없는 가십성 보도를 예상치 못했던바 아닙니다. 이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 전 시장의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그것이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잘못한 사람은 처벌받고,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과 총선 시기를 연관 지어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정치권의 어떠한 외압과 회유도 없었으며, 정치적 계산과도 전혀 무관함을 밝힙니다. 부산을 너무나 사랑하는 한 시민으로서, 부디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번 사건은 ‘오거돈 시장의 성추행’입니다. 피해자의 신상정보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제 신상을 특정한 보도와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 일체를 멈춰주시기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특히 부산일보와 한겨레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향후 제 개인 정보를 적시한 언론 보도가 있을 시 해당 언론사에 강력 법적 조치할 것입니다.
모든 일이 부디 상식적으로 진행되기만을 바랍니다.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