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개미운동’이란 단어가 등장한 지난 3월 중순. 직장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앱 ‘블라인드’에서는 삼성전자가 화제였다. 5만원에 산 사람을 ‘50층 주민’이라고 했다. 주가가 반등하자 ‘버스를 타야 하냐’는 글들이 올라왔다.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상품에 대한 관심이었다. 곧이어 ‘원유’가 등장했다. 유가가 40달러대로 떨어지자 베팅에 나선 직장인들이 급속히 늘었다. 원유 관련 상품 투자는 투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신한 레버리지 WTI 원유선물 ETN(H)’이란 종목은 이를 잘 보여준다.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이 10% 올라가면 20% 이익을 얻는다. “1000만원을 투자해 40달러인 유가가 60달러로 올라가기만 해도 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투자가 몰렸다. 이 종목의 전체 거래량은 작년 1년간 4590만 주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21일 하루 거래량만 작년 1년 거래량의 절반 수준인 2634만 주에 달했다. 원유 가격 폭락으로 주가가 떨어진 영향도 있었지만, 유가가 급반등하면 ‘크게 먹을 수 있다’는 심리가 작용했다.
투기에 가까운 원유 관련 파생상품인 인버스 및 레버리지 상장지수증권(ETN) 거래를 보고 많은 사람은 비트코인을 떠올렸다. 서울 여의도에서는 “비트코인에 몸을 담갔던 젊은 투자자들이 원유 ETN으로 옮겨갔다”는 말까지 나왔다.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감지한 한국거래소는 지난 2일 WTI원유선물 ETN 상품 투자에 주의해 달라고 안내했다. 유가 상승을 보고 투자자들이 ETN을 마구 사들여 실제 가치와 주가 차이를 보여주는 괴리율이 너무 커진 게 문제였다. 그래도 투자는 멈추지 않았다. 9일에는 금융감독원까지 원유ETN 상품에 대해 최고 단계인 ‘위험’ 등급 소비자경보를 발표했다.
21일 유가가 -37달러를 기록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지만 투자자들은 이 종목 거래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한국거래소는 거래를 정지시켜 버렸다. 3월 9일부터 4월 22일 사이 개인투자자는 신한 레버리지 ETN을 2578억원어치 순매수했는데, 이 사이 가격은 91.15%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원유 ETN 열풍의 뒤에는 주식시장에 입문한 30대 투자자들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비트코인에서 갭투자, 미국 주식 직접구매에 이르기까지 발 빠른 행동력과 높은 기대수익률, 레버리지를 두려워하지 않는 위험선호 성향이 급락하는 유가와 만나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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