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이 보존되는 주가연계 파생결합사채(ELB)에 개인 투자자와 퇴직연금이 몰리고 있다. 지난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증시 폭락을 경험한 투자자들이 안전성이 높은 상품으로 눈을 돌린 결과다. 금융회사들도 ‘변동성 장세’에 대비하는 소비자 기호에 맞게 만기가 짧은 ELB를 내놓는 등 대응에 나섰다.
금리 낮아도 안전이 우선
23일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22일까지 ELB는 총 102건, 1조5312억원어치가 팔렸다. 지난 2월(9453억원)과 3월(9184억원)에 비해 60% 이상 급증한 것이다.
‘형님 격’인 주가연계증권(ELS)의 인기를 뛰어넘었다. 통상 ELS 월간 설정액은 ELB의 4~5배 규모라는 점에서 이례적인 현상으로 여겨진다. ELS는 22일까지 총 1조4150억원어치가 판매되는 데 그쳤다. 증시 폭락 여파로 3월(3조8174억원)의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원금을 잃을 가능성이 있는 ELS보다 ELB를 선호하는 투자자가 늘어난 영향이다.
ELS와 ELB는 ‘사촌지간’이다. 만기에 기초자산인 코스피200 등 주가지수가 특정 구간에 들어가 있으면 약속한 금리를 지급하는 파생생품이다. 안전성에서는 큰 차이가 난다. ELS는 지수가 구간에서 벗어나면 원금을 몽땅 잃을 수도 있다. 수익률 연 7~8%대 ELS는 저금리 시대의 ‘국민 재테크’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최근 기초자산인 주요 지수들이 코로나19 여파로 폭락하면서 상당수 ELS가 손실 가능 구간에 접어들었다.
ELB는 투자자에게 약속하는 수익률이 연 2~3%가량으로 ELS에 비해 낮은 대신 원금을 지켜준다. 투자자에게 받은 돈의 90% 이상을 국공채 등 안전자산에 투자하는 ‘자체 헤지’나 별도 계약을 통해 원금 손실 위험을 전가하는 ‘백투백 헤지’ 기법을 쓴다. 지수가 손실 구간에 접어들더라도 이자를 받지 못할 뿐 원금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단기투자 수요 급증
금융사들은 퇴직연금 전용 ELB를 내놓는 등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이달 초 키움증권과 함께 코스피200과 유로스톡50을 추종하는 1년 만기 퇴직연금전용 ELB를 출시했다. 만기 당일 지수가 기준가 이상이면 연 2.4% 수익을 약속하는 구조다.
1년 만기 상품을 ‘주력’으로 밀었지만, 최근엔 3개월 만기 ELB 인기도 높아졌다는 게 하나은행의 설명이다. 지수 등락과 상관없이 연 1.5% 이자를 약속하는 3개월짜리 상품이다. 하나은행이 3일 설정한 ELB에 15억원, 10일 설정한 상품에는 25억원이 몰렸다. 23일에는 40억원으로 규모를 늘렸다.
ELB 투자자의 ‘방망이’가 짧아진 건 자본시장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손실 가능성도 높아진 만큼 ‘당분간 지켜보자’는 단기 투자 수요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5000만원까지 예금자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저축은행 예금과 보험사의 이율보증형보험계약(GIC) 등도 최근 각광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중도상환 수수료가 0.3%로 낮은 것도 단기 ELB 상품이 인기를 끄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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