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15 총선에서 참패를 당한 미래통합당이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는 가운데 '김종인 카드'가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통합당은 이번 비대위가 첫 비대위지만 전신 정당들을 거치면서 지난 10년간 7번의 비대위를 출범시킨 바 있다.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그리고 자유한국당 시절 비대위의 역사는 △2010년 6월 김무성 비대위 △2011년 5월 정의화 비대위 △2011년 12월 박근혜 비대위 △2014년 5월 이완구 비대위 △2016년 6월 김희옥 비대위 △2016년 12월 인명진 비대위 △2018년 7월 김병준 비대위로 이어져 왔다.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을 내세우는 비대위가 출범하게 된다면 최근 10년 사이 여덟 번째 비대위가 된다. 통합당은 거의 매년 비대위를 출범시켜 왔지만 두 번의 박근혜 비대위 이외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적은 한 차례도 없다.
2004년 '천막당사' 카드를 꺼내 들며 무너진 당을 재건했던 박 전 대통령은 7년 후 당에 위기가 찾아오자 다시 비대위원장으로 전면에 등장해 대선을 승리로 이끈 바 있다.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변경해 당 분위기를 쇄신했으며 현역 의원의 25%를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등 강도 높은 개혁을 단행했다. 그 결과 새누리당은 전체 의석수의 과반이 넘는 152석을 차지해 원내 1당의 자리를 지켰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박근혜 비대위에도 참여해 총선과 대선 승리의 공신으로 평가받았다.
이 같은 박근혜 비대위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력 대권 주자라는 점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까지 이어졌던 통합당 전신의 비대위들은 모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새누리당은 20대 총선 참패로 수개월 간 지도부 공백 사태가 발생하자, 2016년 6월 김희옥 전 헌법재판관을 비대위원장으로 앉혔다. 당시 새누리당은 김희옥 비대위에 전권을 주기보다 혁신위라는 또다른 조직을 만들어 '투트랙' 전략을 취하다가 당의 진로에 혼선만 일으켰다. 또 비대위 출범 후에 친박계와 비박계를 배분한 듯한 모양새로 비대위원을 구성했지만, 유승민계 의원들이 배제되면서 혁신 동력을 잃었고 두 달 만에 문을 닫았다.
4달 뒤 새누리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다시 비대위 체제로 전환했다. 갈릴리교회 원로목사였던 인명진 전 윤리위원장을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했다.
인명진 비대위는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꾸며 친박계 청산에 나섰으나 정족수 미달로 상임전국위원회를 열지 못하는 등 비대위 구성부터 친박계 반발에 부딪혀 난관에 봉착했다.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에 대한 징계도 당원권 정지에만 그치면서 말뿐인 혁신 아니냐며 비판에 휩싸였다. 결국 인명진 비대위는 친박의 벽을 넘지 못한 채 3개월 만에 끝났다.
자유한국당은 2018년 6·13지방선거에서 참패하자 다시 비대위 카드를 꺼냈다. 지방선거가 끝난 지 김병준 비대위를 구성한 것이다. 김병준 비대위는 새로운 가치를 보수 재건의 기치로 내걸고 과감한 쇄신 드라이브를 걸었으나 인적 청산에 실패하며 성과는 미미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성공했던 비대위의 경우 강력한 리더십을 기반으로 했던 만큼 김종인 전 위원장 역시 '전권'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모두 낙선하면서 권력의 '진공'이 온 만큼 김종인 전 위원장의 전권 요구에는 명분도 따르는 모양새다.
통합당 관계자는 "그동안 비대위의 성공 여부는 결국 강력한 리더십이였다"면서 "대선 주자도 아니고 총선도 끝난 상황에서 발휘할 수 있는 리더십은 전권밖에 없는 만큼 김종인 전 위원장도 이를 알고 이 같은 요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press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