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의 몇몇 나라들이 특이한 실험을 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고 ‘남녀 홀짝 외출제’를 시행한 겁니다. 남성들은 홀수날에, 여성들은 짝수날에만 외출할 수 있습니다. 매주 일요일에는 남녀 모두 밖에 나갈 수 없지요. 이틀에 하루 꼴로 전국민 가택 연금을 시행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이런 극단적인 ‘성 차별’ 정책을 시행했거나 하고 있는 국가는 페루와 콜롬비아, 파나마 등입니다. 의료시설이 낙후한 국가들이어서 일단 코로나19에 걸리면 치명률이 높은 게 특징이죠. 다소 과도해 보일 수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남녀 홀짝 외출제의 특징은, 당국이 규제 위반자를 쉽게 적발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남성만 외출할 수 있는 날에 여성이 돌아다니면 즉각 체포하거나 거의 한 달치 급여를 벌금으로 물리고 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을 종합하면, 남미 국가들이 이 정책을 시행한 뒤 당황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습니다. 여성 외출이 허용된 날에는 식료품점마다 긴 줄이 형성된 반면, 남성 외출이 허용될 날에는 식료품점이 한가하고 유흥가 등 거리만 북적였다는 겁니다.
‘여성의 날’마다 식료품점에 인파가 몰리니 결과적으로 여성들의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높아졌습니다. 결국 페루는 최근 ‘남녀 홀짝 외출제’를 포기했지요. 페루 정부 관계자는 “처음부터 일주일 중 이틀만 남성 외출을 허용하고 나머지 4일 간은 여성 외출을 허용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성들이 중남미 식 남녀 차별의 희생자가 됐다는 반성입니다.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 문제도 현안으로 떠올랐습니다. 예컨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 전환한 사람이 어떤 날 밖에 나갈 수 있는 지를 놓고 혼란이 빚어졌던 겁니다. 성소수자 단체들은 “성별이 아니라 신분증 번호에 따라 이동을 제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새로운 문제도 만들었습니다. 당국 필요에 따라 지나치게 많은 무료 통행권이 발급됐던 겁니다. 처음엔 성별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는 통행권이 일부 직군에만 주어졌으나 점차 확대됐다고 합니다. 지금은 의사 간호사 등 보건요원은 물론 경찰관, 군인, 경비원, 언론인, 슈퍼마켓 계산원, 배달원, 은행원, 버스 기사, 농부, 외교관 등이 남여 홀짝 외출제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외국인 혐오(xenophobia)는 세계 곳곳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질 정도입니다. 발병지인 중국을 포함해 외모가 비슷한 동양인은 서구권에서 공격에 노출돼 있지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면서 제노포비아 논란을 촉발하기도 했습니다.
팝 가수인 마돈나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코로나19는 위대한 균등자(the great equalizer)’라고 했습니다. 이 바이러스가 감염 대상이 얼마나 부자인지, 얼마나 유명한지, 어디에 사는지, 몇살인지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차별은 갈수록 확산하고 있습니다.
조재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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