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제철소의 용광로가 식어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자동차 생산과 선박 발주가 줄어들면서 철강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아르셀로미탈 일본제철 US스틸 등 세계 주요 철강사는 잇따라 감산에 나섰다. 철강업계에서는 포스코가 12년 만에 감산을 단행할지 주목하고 있다.
“버틸 만큼 버텼다”
15일 외신과 철강업계에 따르면 세계 3위 철강업체 일본제철은 최근 고로(용광로) 2기 가동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바라키현 가시마제철소의 고로가 곧 폐쇄되고,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제철소도 이달 말 고로 가동을 중단할 계획이다. 이 회사의 철강 감산 규모는 연 600만t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제철 생산능력의 약 10%에 해당한다.
세계 최대 철강업체인 아르셀로미탈도 최근 이탈리아 타란토제철소의 생산능력을 25% 줄이기로 했다.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도 고로 4기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미국 US스틸, 인도 JSW스틸도 이달 일부 고로시설을 폐쇄했다. 남미 최대 철강사인 브라질의 게르다우는 전기로 가동을 멈췄다.
글로벌 철강사들의 잇단 셧다운(가동 중단)은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자동차 소비와 생산량이 급감한 영향이다. 투자은행인 RBC캐피털마켓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자동차 생산량은 전년 대비 16%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산업은 전체 철강재 생산량의 30%를 소비하는 최대 수요처다.
철강업계에서는 고로 가동 중단을 ‘고육지책(苦肉之策)’이라고 표현한다. 고로는 전기로와 달리 한 번 멈추면 다시 회복시키는 데 통상 2~3개월이 걸린다. 가동 중단에 따른 손해가 크기 때문에 철강사들은 재고를 떠안을지언정 고로를 멈추는 일만은 피하려고 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 시황이 최악의 국면에 진입했다”며 “글로벌 철강사들이 최근 잇따라 고로 셧다운에 나선 것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재고가 쌓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이 와중에 ‘치킨게임’
국내 1위 철강사 포스코는 아직까지 감산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고로 가동 중단을 선언할 가능성도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포스코가 최근 포항·광양 제철소의 고철 원료 입고량을 조정하자 철강업계에서는 ‘조만간 감산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포스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창사 40년 만에 처음으로 감산한 적이 있다. 두 달간 57만t을 감산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여러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지만 아직 고로 감산을 결정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현대제철은 최근 당진제철소 전기로의 철강 생산량을 줄였다.
이 와중에 중국 제철소들은 재고 부담에도 아랑곳없이 생산량을 오히려 늘리고 있다. ‘치킨게임’을 벌여 세계 철강업체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바오산강철 허베이강철 등 전 세계 철강 생산량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업체들은 감산에 동참하지 않았다. 올해 1~2월 중국의 철강 생산량은 전년 동기보다 3.1% 증가했다. 3월에도 고로 가동률이 상승했다. 생산량 증가에도 수요가 줄면서 중국의 철강 재고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치인 3300만t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철광석 가격 고공행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재료값 부담마저 커지고 있다. 국제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대부분 폭락했지만 철광석 가격은 고공행진하고 있다. 철광석 가격은 현재 t당 83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예년보다 10~20달러 높은 수준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주춤해진 중국에서 고로 가동률을 높일 것이란 기대가 작용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1분기 포스코의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6764억원이다. 전년 대비 43.8%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작년 4분기 20년 만에 적자를 기록한 현대제철은 올해 1분기에도 적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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