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입니다/남을 웃기기도 하고 혼자서 웃기도 많이 웃죠’.
등단 3년차 이원하 시인이 최근 펴낸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문학동네)에 실린 표제시의 한 구절이다. 절망 속에서 울지 않기 위해 웃는 것과는 다른, 정말 웃을 수 있어서 웃는 사람이 된 듯한 모습이 그려진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분명 시인이 쟁취한 웃음이지만 시인은 시집 전체를 통해 제주가 자신에게 준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어한다”며 “어떤 마음의 역사가 이 시를 쓰게 했는지 궁금해진다”고 말했다.
이 시인이 등단 초기 썼던 시들은 “눈치란 걸 보지 않는 천진한 시, 근육질의 단문에 할 말은 하는 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다르다. 제주라는 섬 자체가 된 시인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훌쩍 홀로 제주로 떠나 살기로 한 사람, 수국을 사랑하고 바다를 자주 바라보며 자꾸 걷는 사람, 날이 차가워지면 얼굴이 빨개지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미련을 곱씹어보고 또 혼자 몰래 우는 사람 등 시인 자신의 모습을 작품 속에 투영했다.
‘필 꽃 핀 꽃 진 꽃’이란 시에서 시인을 ‘바다 한가운데 놓인 화분 같은 섬’이라고 표현한 장면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시집은 시인이 사는 제주라는 풍요로운 자연 속 아름다운 것들을 소재로 시인의 마음속 기쁨과 슬픔, 삶에 대한 고민과 누군가에 대한 기다림 같은 서사를 탐구해온 결과물을 하나씩 꺼내 보여준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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