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되는 요즘, SNS상에는 집에 있는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기 위한 다양한 영상과 팁이 올라온다. 집에서 최고 수준의 국내외 공연을 즐기거나 미술관 혹은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가 거의 무료로 제공된다. 필자도 학교에서 나오면 집에만 머무르다 보니 이런 콘텐츠를 잠시나마 둘러볼 수 있을 정도의 시간 여유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연구와 강의로 지금까지 바쁜 나날을 보낸 삶이 아쉽다는 생각도 한다. 오죽하면 아들이 사춘기 시절 “아버지처럼 바쁘게 살고 싶지 않다”며 공학자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했겠는가.
조금의 변명을 해보자면 필자의 시대는 바쁜 것이 미덕인 시대였다. 조금의 쉴 틈을 제외하고는 꽉 들어찬 일정을 소화해야 훌륭한 학자로 평가받았다. 물론 지금도 한정된 시간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연구자를 꿈꾸는 어린 세대나 당장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자신의 연구를 시작하는 젊은 연구자들은 시간을 과감하게 낭비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연구는 흥미로운 만큼 지난(至難)하다. 생각한 만큼 빨리 성과가 나오지 않기도 하고, 전혀 다른 방향의 결과 또는 실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래서 중도에 포기하는 이도 있고, 더욱 연구에만 매달리기도 한다.
그래서 스페인의 물리학자 페드로 미구엘 에체니크가 젊은 연구자들에게 건넨 “열심히 일하는 것과 항상 일하는 것을 착각해선 안 된다”는 조언은 더욱 큰 의미가 있다. 그의 말처럼 연구란 엄청난 집중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 틀에 박힌 일을 오랫동안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 분야만 끝없이 파는 장인(匠人)적 연구가 필요했지만, 보다 융합적 연구가 필요한 지금은 다양한 경험으로 영감을 받고 여러 사람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과학자도 중요해졌다. 이 시대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술이 매일 새로워지는 격랑의 시대며,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좋은 연구자’란 결국 국가와 사회, 경제 발전에 실제로 기여하는, 세상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에 ‘시간 낭비’로 치부하던 일, 즉 여러 사람과 차를 나누거나 자신의 연구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논문을 읽거나 세미나를 듣는 일, 문화공연을 감상하며 휴식하고 여유를 즐기는 것은 이제 낭비가 아니게 됐다.
이공계 대학 교육도 전공 교육에 천착하기보다 학생이 해보고 싶은 일에 여러 가지로 도전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 토론과 협업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학생 역시 하고자 하는 일에는 온전하게 몰입할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 준비를 해둬야 한다. 스스로 행복할 줄 모르고, 또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할 줄 모르는 연구자는 세상을 더 이롭고 행복하게 만들어나갈 리 없기 때문이다.
후배 연구자들이 시간을 더 여유롭게 보낼 수 있게 된다면, 그들은 자녀에게 필자와는 전혀 다른 말을 듣게 되지 않을까. “아버지, 어머니처럼 연구자로 살면 행복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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