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n번방’의 운영자뿐 아니라 단순 관전자도 모두 엄히 처벌해 달라는 여론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중심으로 들끓었다. 법조인들 사이에선 “현실성이 없다”는 얘기가 나왔다. 아동음란물을 단순히 시청만 한 행위를 처벌할 법규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아동청소년성보호법(아청법)에는 아동음란물을 제작·배포·소지한 행위 등에 대한 벌칙규정만 존재할 뿐, 시청과 관련한 조항은 없다.
하지만 n번방 사건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전인 지난 1월. 서울 소재 검찰청의 A검사는 아동음란물을 메신저를 통해 시청만 하고 노트북이나 USB 등에 별도로 저장하지 않은 B씨에 대해 아동청소년보호법(아청법)상 음란물 소지죄를 적용해 유죄를 이끌어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B씨는 카카오톡을 통해 미성년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상대방에게 음란한 영상물을 촬영해 전송하도록 했다. B씨는 해당 음란물을 시청하긴 했지만 보고 바로 지웠다고 진술했다. 그는 “시청하기만 했을 뿐 휴대전화에 ‘저장’한 사실이 없으므로 음란물 소지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그러자 A검사는 카카오톡에 사실조회를 요청했다. 해당 회사로부터 “이용자가 동영상을 재생시켜 시청하면 이용자 휴대폰 카카오톡 앱의 내부 디렉토리에 동영상이 저장된다”, “‘채팅방 나가기’를 하거나 톡을 삭제한 후 재설치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동영상을 다시 보거나 별도로 기기에 저장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이를 근거로 “B씨는 카카오톡 내부 디렉토리에 저장하는 형태로 아동음란물을 ‘소지’했다”는 논리를 폈고,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현행법의 미비점을 지적하기에 앞서 기존 법 조항을 최대한 활용해 범죄에 상응하는 죗값을 받도록 한 검사의 의지가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대다수 법조인들은 이 검사처럼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범죄를 엄단하겠다는 적극적 의지를 보이기는 커녕, 현행법에 적시된 법정형에 훨씬 못 미치는 관대한 처벌을 내려왔다.
지방의 한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1월 오피스텔 임대비와 촬영기기 구입비 등 600만원을 지급하며 타인에게 미성년자 음란물을 촬영하도록 한 C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는데 그쳤다. 아청법상 음란물제작 행위의 법정형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인 점과 비교할 때 큰 차이가 난다. 이마저도 1심(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보다 형이 가중된 것이다.
재판부는 C씨가 “음란물의 ‘제작자’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될 만하다”고 했으면서도 △주범이 아니라 방조범인 점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형사처벌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감경 요인으로 봤다. 법원이 아동성범죄 사건에 관해선 가해자에게 지나치게 너그럽다는 비판에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실제로 2018년 1심 기준, 아청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 가운데 실형이 선고된 비율은 33%에 불과했다. 집행유예가 38%, 벌금 등 재산형이 14%였다. 아청법에 규정된 형량은 결코 적지 않다. 하지만 관련 사안에 대한 심각성 이해 부족, 의지 부족 등으로 법원은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왔다.
결국 의지의 문제다. 다행스럽게도 검찰과 법원은 최근 디지털 성범죄를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속속 내비치고 있다. 검찰은 지난 13일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을 구속기소했다. 보완수사를 통해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법원도 조만간 양형기준을 마련해 아동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대폭 높일 것으로 보인다.
물론 때가 늦었다는 아쉬움은 가시지 않는다. 살인·강도 등 전체 범죄 건수는 매년 감소 추세이지만 성범죄만 나홀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소라넷, 다크웹 사건 당시, 지금과 같이 발빠른 대처가 나왔다면 어땠을까. 법령 등 제도의 미비나 능력 부족이 아닌 수사기관과 법원의 의지 부족이 문제였다는 점이 못내 아쉬움을 더한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