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보험업계는 다들 “큰일났다”고 했다. 보험은 설계사와 소비자가 직접 얼굴을 맞대는 ‘대면 영업’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손해보험회사인 삼성화재는 달랐다. 이런 와중에도 신계약 유치 실적이 크게 뛴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사태보다 반년 앞서 가동한 ‘디지털 영업 시스템’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게 회사 측 분석이다.
코로나19 터져도 新계약 안 줄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의 올 1분기 장기인(人)보험 신계약은 68만225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8만6050건)보다 27.3% 늘었다. 지난 1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35.2%, 2월에는 45.4% 뛰었고 코로나19 충격이 본격화한 3월에도 9.2% 증가했다. 장기인보험은 암·치매·어린이보험 등 장기간에 걸쳐 사람(人)의 질병·재해 보장에 집중하는 상품을 말한다. 손해보험업계 실적의 60~70%를 책임지고 있고 경쟁도 가장 치열한 분야다.
삼성화재가 2월 말 대구지점을 임시 폐쇄하는 등 영업에 차질을 빚었음을 감안하면 ‘의외의 선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회사 측은 “지난해 구축한 24시간 디지털 영업 시스템이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설계사가 처음 보는 소비자에게 보험을 권하고 계약을 성사시키려면 일정 기간 수차례 만나는 게 보통이다. 보여줘야 할 자료도, 서명을 받아야 할 서류도 많다. 디지털 영업 시스템을 활용해 이런 과정을 상당 부분 간소화했다는 게 삼성화재의 설명이다.
가입 설계 38% 주말에 이뤄져
삼성화재는 작년 8월 야간이나 주말에도 보험 상담과 가입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영업 시스템을 가동했다. 설계사가 소비자에게 맞는 상품을 제안한 뒤 전자서명을 받아 보험료 납부와 계약까지 한 번에 마칠 수 있다. 이런 업무를 연중무휴로 처리할 수 있는 보험사는 현재까지 삼성화재뿐이다.
이 회사 소속 설계사들은 서류뭉치 대신 태블릿PC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모든 서명을 종이에 받던 시절에는 일부가 누락되면 다시 만나야 했다. 디지털 계약으로 전환한 뒤에는 이런 실수도 원천 차단됐다. 설계사들이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업무시간에 짬을 내기 힘든 소비자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게 됐다”며 “계약 후 보험료 수납이나 보험증권 전달 등을 위해 설계사를 접촉해야 하는 횟수도 줄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시스템은 영업 현장에 빠르게 안착하고 있다. 지난달 기준 전체 장기인보험 계약의 8.8%가 야간·주말에 체결됐다. 상품을 추천하고 견적을 내주는 ‘가입 설계’ 업무는 전체의 38.4%가 주말에 이뤄졌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영계획을 통째로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지만, 1분기 영업 성적표는 희망을 보여줬다는 게 삼성화재의 판단이다.
“보험사도 디지털 이식해야 생존”
삼성화재는 상품 판매뿐 아니라 가입 심사, 보험금 지급 등 업무 전반에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장기인보험의 가입 심사는 전체의 70%, 보험금 지급 심사는 35% 안팎이 자동화됐다. 2018년에는 단순 반복업무를 컴퓨터에 맡기는 로봇프로세스자동화를 도입해 본사 직원들의 업무시간을 연간 7800시간 이상 절감하는 효과를 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보험업계에도 ‘언택트’(대면 접촉을 꺼리는 소비방식)가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며 “디지털 전환에서 주도권을 잡는 업체가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삼성화재는 카카오와 디지털 손해보험사를 공동 설립하기로 하고, 조만간 예비인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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