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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Fed 은총을 입은 증시 Vs 공포 커진 실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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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쌓인 현금 더미가 미래의 걱정꺼리까지 다 사들이고 있다."
미국의 억만장자 투자자인 마크 큐반이 8일(현지시간) CNBC에 출연해 한 말입니다.

뉴욕 증시는 이날도 올랐습니다. 다우지수는 779.71포인트(3.44%) 급등한 23433.57로 마감됐습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3.41%, 나스닥은 2.58% 상승했습니다.

민주당의 대선 경선에 나섰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사퇴, 그리고 9일 오전 10시(미 동부시간) 열리는 산유국들의 감산회의를 앞두고 유가가 급등한 게 긍정적 영향을 줬습니다.

뉴욕주의 코로나바이러스 신규 사망자 수는 하루 779명으로 나타나 하루 최대 사망자 기록을 세웠지만, 투자자들은 신규 입원자가 줄어든다는 소식에만 집중했습니다.



이제 S&P500 지수는 최고점의 15% 이내로 바짝 다가섰습니다. 사상 최악의 침체가 앞을 가로 막고 있지만 눈깜짝할 사이에 반등했습니다.

기본 배경은 큐반이 언급한 '돈의 힘'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미 중앙은행(Fed)은 지난 3~4월 1조5000억달러를 풀었습니다. 이런 속도라면 올 초 4조달러 수준이었던 Fed의 자산은 올해 말 10조달러에 달할 것(블랙록 추정)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지금 속도라면 열흘에 한 번씩 2008년 1차 양적완화(QE1)를 실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여기에 미 행정부의 재정 적자도 올해 3조5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2조2000억달러의 3차 부양패키지 시행에 들어간 가운데 미 의회와 행정부는 1조달러 규모의 4차 패키지를 또 다시 협의하고 있습니다.



금융시장 참여자들은 Fed가 지난 한 달간 1초당 100만달러 속도로 풀어낸 현금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그동안 '쌍바닥'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주식을 사지 않은 이들은 'FOMO'(Fear of Missing Out)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혼자 왕따당할까 두려월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월가 관계자는 "너무 단기에 급반등한 만큼 주가가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과매도됐던 지난 3월23일 수준까지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히 "시장 급반등을 부른 엄청난 돈은 앞으로 몇년간 투자자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Fed가 이날 공개한 지난달 3·15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엔 "참석자들은 미 경제가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완전고용 및 물가 안정을 달성할 수 있는 궤도에 올랐다고 확신할 때까지 금리를 0~0.25%로 유지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한다"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위기는 금새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V'자 반등 이야기는 쏙 들어갔고, 'U'자 혹은 'L'자를 놓고 논쟁이 있는 상황입니다.
벤 버냉키 전 Fed 의장은 어제 "미국의 경제활동 재개는 단계적으로 할 수 밖에 없고, 상당 기간 경제활동은 느리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물가 목표 2%를 달성하기는 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야하는데 지금으로서는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큽니다. 버냉키는 "전체적으로는 인플레가 아니라 디플레이션 압력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통상 인플레 동인은 인건비, 유가 등입니다. 하지만 실업률이 2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화에서 인건비는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유가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올 초 배럴당 60달러대이던 유가는 최근 20~30달러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소비가 주저앉은 탓입니다. 그것도 감산협의 소식에 지난주부터 꽤 오른 겁니다.



물론 경제는 모릅니다. 유동성이 워낙 많이 풀린 상황이어서 돈의 유통속도가 빨라진다면 물가는 순식간에 오를 수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 과정에서도 이런 인플레에 대한 걱정이 계속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10년간 저물가를 이끈 건 세계화와 전자상거래 등이었습니다.

세계화와 이에 기반한 공급망은 이번에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의 복잡성과 위험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각국 정부는 공중보건을 앞세워 무역, 여행 및 이주를 억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자상거래가 대세로 부상했습니다. 미국에선 60~70대까지 몰려들면서 아마존의 이틀배송은 일주일 이상 걸릴 정도로 느려졌습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인터넷 상거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렇게 전자상거래가 확대되면 기업들이 공급망 재편으로 인한 비용상승분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기 어렵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인플레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테일리스크' 수준으로 보고 있다"며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연 0.7% 수준에 머물고 있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테일 리스크는 발생 가능성이 희박하고 예측하기 힘든 위험을 말합니다. 다만 혹시 터지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지요.

제로금리가 낮게 오랜기간 유지된다면 투자자들은 주식, 부동산으로 몰릴 수 밖에 없습니다. 국채에 투자할 경우 기껏해야 연 1% 안팎의 수익밖에 거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게다가 주식시장이 정말로 망가질 수준까지 폭락한다면 Fed가 일본은행처럼 주식 상장지수펀드(ETF)를 살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재닛 옐런 전 Fed 의장은 최근 "Fed는 법적으로 주식은 살 수 없으며 당장은 필요없다"면서도 "미 의회가 그런 권한을 Fed에 부여하는 걸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막대한 돈의 힘은 이런 논리로 미 증시를 들어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악화되고 있는 실물경기와는 괴리되어 있습니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은 1340만 임대주택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4월 월세를 지불한 비율이 69%에 그쳤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는 지난 3월의 81%보다 급락한 겁니다. 이는 모기지 증권의 대량 디폴트(부도)를 부를 수 있습니다.

9일 발표될 주간 실업급여 청구건수도 또 수백만건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지난주 기록(664만건)을 넘어 새로운 기록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소비도 급감하고 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인의 48%가 여행을 취소했고 35%는 큰 지출을 줄였습니다. 이런 추세는 상당기간 이어질 수 있습니다.
미국 경제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소비가 줄면 기업들은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실물경제 곳곳에선 부도 공포, 대량 실업이 발생하고 있지만 뉴욕 증시의 상황은 반대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주가는 미래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경기가 회복될 3분기, 내년을 생각하고 지금 사야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유명 투자자 데이비드 테퍼는 이날 "지금의 랠리는 이해되지 않는다. 내가 대화한 모든 기업들이 파산을 얘기하고 있고 크레딧 시장은 엉망이며, 실업률은 20%를 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큐반도 "지난 2주간 주식을 사지 않았고 현금을 모으고 있다"며 "나는 투자자들이 실제 시장의 다른 쪽(실물)에서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지 감안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실물 경제의 상황은 점점 더 어렵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괴리는 메워질까요? 그렇다면 언제 어떤 식으로 메워질까요?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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