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생각이지만 미래 따지면 나을 수도
자동차에 있다 보니 가끔 발칙한(?) 상상을 할 때가 있다. 국내 완성차기업의 양강 구도 형성이다. 쉽게 보면 '현대기아 vs 나머지 3사'를 그릴 때가 있다.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나머지 3사의 제품군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면 규모와 경쟁력이 생겨 미래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어서다. 물론 각 사 대주주가 모두 외국기업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국내에 존재하는 한국 기업이라는 시각으로 본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된다.
상상의 시작은 이렇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국내 판매는 126만대인 반면 나머지 3사는 26만대를 판매했다. 모두 뭉쳐도 현대기아차에 100만대나 뒤질 만큼 규모가 작다. 나아가 같은 기간 현대기아차가 320만대를 만들어 수출할 때 나머지 3사는 71만대를 해외로 내보냈는데 차이는 무려 249만대에 달한다. 그러니 나머지 3사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현대기아차를 내수에서 절대 이기지 못한다.
물론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제품이다. 그런데 제품 개발 비용의 차이는 제조사마다 크지 않다. 그러니 덩치가 작을수록 개발 비용이 부담돼 신차 출시가 늦어지고, 그만큼 소비자 관심에서 멀어진다. 예를 들어 새로운 제품을 내놓고 각각 5년과 7년 뒤 후속 차종을 내놓는다면 같이 지속되는 5년은 경쟁할 수 있지만 그 이후 2년은 경쟁 자체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7년 후 새 차를 내놓는 곳은 언제나 '판매감소-개발비용 축소-개발 기간 지연'의 악순환을 되풀이해왔다. 이때마다 예기치 못한 시장 상황으로 유동성 위기에 처하면 국내 공장의 일자리 확보 차원에서 정부 재정이 투입된다. 하지만 다시 어려워지면 한국 내 공장은 언제든 철수 대상인 만큼 근본적인 처방이 없다면 상황은 그저 되풀이될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나머지 3사의 제품 간 시너지다. 르노삼성은 SUV 제품이 부족하고 쌍용차는 세단이 없으며, 한국지엠은 중대형 세단이 부족하다. 그러니 제품의 보완성은 충분히 완성될 수 있다. 그리고 세 회사 모두 국내에 R&D를 가지고 있다. 물론 르노삼성과 한국지엠의 R&D 역할은 부분적이지만 중요한 것은 개발부문 통합에 따른 시너지 향상 가능성은 높다는 것이다.
그럼 셋이 뭉쳤을 때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할까? 기본적으로 R&D는 통합으로 개발 비용을 낮출 수 있고 생산은 두 가지 방식으로 고민할 수 있다. 지금처럼 자체 및 위탁 생산 이원화를 추구하면 된다. 동시에 3사 통합 브랜드를 만들어 각자 수출에 나설 수도 있다. GM에서 한국지엠의 주요 역할은 소형 SUV의 미국 시장 공급인 만큼 주식을 인수할 때 '위탁' 방식을 추진하면 되고, 르노삼성 또한 르노 제품을 대신 만들어 지금처럼 공급해주는 장기 계약을 맺으면 된다. 이 과정에서 세 회사의 국내 판매망을 통합하면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고 여러 면에서 비용이 줄어 현대기아차와 경쟁 가능한 구도가 만들어진다. 물론 이때 3사 통합의 대주주는 정부가 되겠지만 훗날 경쟁력이 높아졌을 때 매각을 추진하면 된다.
사실 연간 180만대 내수 시장에서 제조사가 5곳이나 된다는 것은 시장 규모에 비해 산업이 비대하다는 것과 같다. 그러니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작금의 국내 자동차산업이다. 하지만 해외 시장도 점차 축소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그러니 자체 수출망이 없는, 있어도 규모가 초라한 나머지 3사는 대주주의 의향에 따라 미래 생존이 결정되는데 당연히 최우선은 한국이 아니라는 점에서 국내적 시각으로 보자는 뜻이다.
물론 걸림돌은 엄청나게 많다. 통합에 따른 브랜드 운용과 정부의 역할론에 대한 비판도 쏟아질 것이다. 규모만 키운다고 미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힐난도 당연하다. 그러니 지금은 말 그대로 발칙한(?) 상상에 머물 뿐이다. 하지만 세 곳의 개발부문만 통합해도 경쟁력은 높아질 수 있다. 대표적으로 친환경 이동 수단의 플랫폼을 만들어 서로가 공유하는 것만 해도 부담은 낮출 수 있다는 뜻이다. 덩치에 비해 많이 투입되는 엄청난 개발비용은 모두를 힘들게 하는 공통 사안이니 말이다.
박재용(이화여대 미래사회공학부 연구교수,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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