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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오판이 코로나 사태 키웠다"…英의 뒤늦은 후회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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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에 가까운 노벨상 과학분야 수상자. 세계 최대 규모의 공공의료보건서비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등 세계 유수의 제약업체들을 보유한 국가. 이 나라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이어 국가의료시스템이 마비될 위기에 처했다. 코로나19 대응 최전선에 있는 의료서비스 인력조차 검사 인프라 부족으로 제대로 된 검사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인 과학 선진국으로 불리는 영국이 직면한 현실이다. 영국은 정부의 안이한 판단과 방역 실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영국 보건당국에 따르면 2일(현지시간) 기준 누적 확진자는 3만3718명으로, 전날 대비 4244명 늘어났다. 사망자는 2921명으로, 전날에 비해 569명 증가했다.

겉으로 드러난 확진자 수치만 보면 이탈리아(11만5242명), 스페인(11만2065명), 독일(8만4788명), 프랑스(5만9105명)에 비해 사정이 나은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실제 확진자가 이보다 최소 열 배 이상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영국 정부도 지금으로부터 2~3주 후에는 이탈리아와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 추세가 계속되면 영국도 이탈리아와 스페인처럼 국가의료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는 뜻이다.

영국에선 호흡 곤란 등 심각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에게만 코로나19 검사를 한다. 의심 증상이 있다고 해도 집에 머물러 있으라고만 할 뿐이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영국의 인구 100만명당 코로나19 검사건수는 2300여건이다. 독일(1만15건)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한국은 이미 지난달 중순께 6000건을 넘었다. 하루 기준으로 보면 한국이 2만건을 넘는 반면 영국은 8000건 안팎에 불과하다. 전직 보건장관인 제러미 헌트 하원 보건·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은 “한국이나 독일처럼 대규모로 코로나19 검사를 해야만 현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검사 역량이 부족하다보니 코로나19 대응 최전선에 있는 의료진들조차 현장에 투입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의심증상이 있거나 가족 중 의심증상이 있는 의료인력들이 검사를 기다리느라 자가격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간 더타임스는 “한국에선 지방도시인 기장군에서조차 차를 몰고 가까운 검진센터에 가서 금방 검사를 받을 수 있다”며 “영국 런던에선 이런 검사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진 이후 정부에 대한 비판을 가급적 자제해 왔던 영국 언론들은 부실한 검사 인프라에 대해 비판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일간 데일리텔레그래프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인들의 오판이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위협이 지난 1월 말부터 다가오고 있었지만 영국 정부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늦은 대응에 대한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는 것이 데일리텔레그래프의 지적이다. 더타임스도 “영국 정치인들은 사태가 악화된 후에서야 한국과 독일을 따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정부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이달 중순에도 결정적인 판단 착오를 했다. 영국은 이 때 이른바 ‘집단면역’을 강조했다. 당시 패트릭 발란스 정부국가과학기술 고문은 “일종의 집단감염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면역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집단면역은 감염병에 대한 면역을 가진 사람들의 비중을 높여 바이러스 유행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인구 중 대략 60%가 면역을 얻으면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접근이다.

영국 정부는 이를 앞세워 휴교나 상점 폐쇄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영국 정부가 대규모 검사 인프라를 준비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체 인구의 다수가 코로나19에 감염된다는 전제에 따른 것이다. 검사 인프라 확대보다는 산소호흡기, 치료 병상 등의 확보에 더 집중했다. 하지만 집단면역의 가장 큰 문제는 인구의 60%가 면역을 얻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집단면역 조치가 계속되면 최악의 경우 26만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연구보고서가 나오자 영국 정부도 뒤늦게 방침을 바꿨다. 외출금지령 및 상점 폐쇄조치도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일주일 이상 늦었다.


영국 정부는 뒤늦게 코로나19 검사 역량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맷 핸콕 보건장관은 2일(현지시간) 정례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검사역량을 일 10만건 수준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핸콕 장관은 공중보건국 연구소를 통해 표본 검사를 계속 추진하고, 아마존이나 부츠와 같은 민간기업 등과 협력해 검사 역량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보리스 존슨 총리(사진)도 전날 저녁 트위터를 통해 “검사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코로나19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이번 계획대로 하루 검사역량이 10만건까지 늘어날 지 여부는 미지수다. 가디언은 영국의 하루 검사역량이 이달 말까지도 2만5000건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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