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01일(14:14)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항공사들의 자금 조달환경이 갈수록 얼어붙고 있다. 가장 확실한 조달수단인 항공권 판매수익을 기초자산으로 한 자산유동화증권(ABS)마저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6000억원어치 ABS가 발행일인 지난달 30일 이후 550억원(순매수 기준)어치만 거래되는 데 그쳤다. 발행물량 대부분이 채권시장에서 소화되지 않은 채 인수를 맡은 산업은행과 14개 증권사가 나눠 들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 ABS는 대한항공이 앞으로 항공권 판매를 통해 거둬들일 수익을 기초자산으로 삼고 있다. 조달금액의 몇 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항공권 판매수익의 일부로 ABS를 갚도록 정해져있다.
비교적 높은 수익률에도 좀처럼 투자자들의 시선을 붙잡지 못하고 있다. 이번 ABS는 1년3개월부터 5년까지 3개월 단위로 만기를 나눠 총 16종류로 발행됐다. 이 중 최단기인 1년3개월물이 연 2.685%, 최장기인 5년물이 연 4.612%의 금리로 발행됐다. 만기가 2년 이상인 4600억원어치 ABS의 수익률이 모두 3%가 넘는다.
6개월 전만 해도 내놓으면 곧바로 ‘완판’될 정도로 높았던 인기가 급격히 식었다. 대한항공이 지난해 9월 찍은 5000억원어치 ABS는 물량 대부분이 발행 당일 채권 유통시장에서 팔렸다. 웬만한 A급(신용등급 A-~A+) 회사채보다 높은 금리를 눈여겨 본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섰다. 당시 ABS 발행금리는 최고 연 3.497%(5년물)로 만기가 같은 A등급 회사채 평균금리(시가 기준 연 2.708%)보다 0.8%포인트가량 높았다.
굳건했던 원리금 회수 가능성이 흔들리면서 투자심리가 급격히 냉각됐다는 평가다. 그동안 항공사 ABS는 높은 수익률과 안전성을 겸비했다는 평가에 힘입어 채권시장의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켜왔다. 항공기 운항만 계속되면 원리금을 못 돌려받을 걱정이 없는 고금리상품이라는 점이 인기를 떠받쳤다. 신용평가사들 역시 이 같은 상품구조를 바탕으로 항공사 ABS의 신용등급을 발행회사보다 두 단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대유행(팬데믹) 국면으로 치달으면서 상황이 변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주요 국가들이 사람들의 이동을 통제하면서 전 세계 여객 수요가 급격히 줄고 있다. 직격탄을 맞은 항공사들은 줄줄이 주요 국제선 운항을 중단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난 1월20일부터 이달 30일까지 대한항공의 탑승객 수는 총 335만7105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8.6% 줄었다. 3월만으로 놓고 보면 감소율은 80.2%에 달한다. 상당수의 항공기를 띄우지 못하는 비상사태를 맞게 되자 이 회사는 다음달부터 임원들이 급여의 일부를 반납하고 유휴자산을 매각하는 등 강도 높은 자구안을 실시하기로 했다.
IB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전격적인 항공사 지원방안을 꺼내거나 코로나19가 종식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한 투자심리가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번 ABS를 인수한 증권사들이 한동안 보유물량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항공기가 뜨지 않는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지자 대한항공이 그동안 발행해놓은 대규모 ABS의 상환 부담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ABS 상환재원인 항공권 판매실적이 회복되지 않으면 조기상환 조건이 발동될 수 있어서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이달 들어 대한항공(BBB+)과 이 회사의 ABS(A) 신용등급을 모두 하향검토 대상에 올렸다. 지난해 말 기준 대한항공의 ABS 발행잔액은 약 1조7100억원에 달한다.
박소영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코로나19가 지속적으로 확산되면서 항공 수요가 정상화되기까지 상당히 오래 걸릴 수도 있다”며 “지금처럼 매출이 급감하는 상황이 2~3개월 더 이어지면 ABS 조기상환 조건 발동 등으로 대한항공의 유동성 관리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