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무기기 업체 제록스가 프린터·PC 업체 휴렛팩커드(HP)를 인수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수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졌다고 판단해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인수합병(M&A) 시장도 꽁꽁 얼어붙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1일(현지시간)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제록스는 30억달러(약 3조6800억원) 규모의 HP 인수 계획을 모두 중단하기로 했다. 제록스는 "현재 공중보건의 비상 상황과 이로 인한 시장 침체로 더 이상 인수를 진행하기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제록스는 지난해부터 HP에 수 차례 인수를 제안했지만 거듭 거부당하자 적대적 M&A에 나서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당초 제록스는 자금 확보를 위해 글로벌 은행 등으로부터 대출을 받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일본 후지필름과 합작회사인 후지제록스 지분 매각 등을 통해서도 자금을 충당하려고 했다. 그러나 경기 침체로 제록스의 시가총액이 5개월 사이 반토막으로 줄어드는 등 시장 상황이 악화돼 결국 인수 계획을 철회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글로벌 M&A 시장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주 전 세계 M&A 규모는 125억달러로, 주간 기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1분기 전체 M&A 금액은 6980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8% 급감했다.
미국 시장의 1분기 M&A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51% 급감한 2530억달러에 그치는 등 가장 타격이 컸다. 레온 칼바리아 씨티그룹 기업고객부문 대표는 “대부분 기업이 M&A 활동의 '정지' 버튼을 누르고 있다”며 “시장이 단기적으로 정체 상태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은 직원과 고객을 먼저 생각하고 있다”며 “이런 환경에서 현금으로 M&A에 나설 회사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위기가 2008년 금융위기와는 다르다는 점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되면 M&A 활동이 다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로스 에스페랑스 USB 은행부문 공동대표는 "M&A 활동이 둔화됐지만 물밑에서 대화는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며 “일단 사태가 끝나면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크고 빠르게 시장이 회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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