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과의 싸움이 될 것이다. 'V'자 반등 시나리오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는다."
31일(현지시간) 통화한 월가 관계자의 말입니다.
지난 3월 초 캘리포니아주, 뉴욕주 등이 봉쇄되기 시작할 때만 해도 월가의 대부분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잡히고 나면 경기는 'V'자 반등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과거 메르스, 사스 등이 돌았을 때 그랬었다는 겁니다. 잠시 움추러들었던 사람들이 전염병이 사라지고 나면 쓰지 못했던 돈을 더 지출할 것이란 관측이었죠.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는 이런 전염병과 그 경로가 다른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메르스, 사스가 아니라 기록도 제대로 없는 1918년 스페인 독감을 뒤쫓는 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당시 발병후 2년간 전세계적으로 약 5000만명이 사망했던 병입니다.
골드만삭스는 어제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을 대폭 수정했습니다. 1분기 9%, 2분기 34% 각각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일주일 전 예상했던 -6%, -24%보다 훨씬 더 떨어뜨린 겁니다.
경기가 회복되는 3분기는 당초 12% 성장할 것이란 예측치를 19% 성장으로 바꿨습니다.
하지만 숫자를 잘 보십시오. 이건 'V'자가 아닙니다. 2분기 -34% 위축되고 3분기 19% 성장한다면 절반 정도 복구하는 셈입니다. 'U'자에 가깝게 예상을 바꾼 것이죠.
그것도 지금 예상하는대로 코로나바이러스가 2분기 안에 잡혀야 합니다.
골드만삭스 뿐이 아닙니다. 노무라는 유로존 경기 전망에서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가 2024년까지 미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원래 성장률 경로로 복귀하는 데 최대 4년까지 걸릴 것으로 예측한 것입니다.
물론 유로존은 워낙 잠재 성장동력이 낮아 회복탄력성도 떨어지기 때문이겠지요.
로이터에 따르면 헤지펀드업계의 유명 투자자인 스티브 코헨도 증시가 V자로 회복할 것이란 시나리오를 내쳤습니다.
그는 내부 임직원에게 돌린 메모에서 "시장은 일직선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지진 후에는 여진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경기는 이미 침체에 빠졌습니다.
2억5000만명에 가까운 인구가 집에 머물고 있고, 매주 300백만명의 새로운 해고자가 생겨날 판입니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연방은행 총재는 이날 야후파이낸스와 인터뷰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집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이미 침체에 빠져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경제는 개선되기 전에 더 악화될 것으로 본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경기 하강의 기간과 강도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행돼도 10만명에서 24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향후 8주간 지원액이 담긴 2조2000억달러 규모의 구제 패키지를 내놓은 미 행정부와 의회가 다시 더 큰 규모의 4차 구제 패키지 준비에 나선 건 이런 사정을 감안한 걸 겁니다.
역사를 봐도 침체에 빠진 경제, 그리고 증시는 금방 회복되지 못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938년 침체때는 회복에 13개월이 걸렸고, 통상 16~18개월은 소요됩니다. 1933년 대공황 때는 무려 43개월이 걸렸습니다.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은 최근 최악의 경우 미국의 실업률이 32.1%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는 대공황 당시 24.9%보다 훨씬 높습니다.
중국의 3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52.0으로 발표되면서 V자 회복 희망에 대한 불을 지폈습니다. 이는 2월 35.7보다 대폭 개선된 것이며 시장 예상치인 44.8보다도 훨씬 높았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PMI는 하드데이터(실물 지표)가 아니라 설문조사에 기반한 소프트데이터(심리 지표)"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의 코로나바이러스 통계를 믿을 수 있다면 이것도 신뢰할 수 있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해줄 수 있는 건 치료제 혹은 백신의 개발입니다.
어제 존슨앤드존슨은 오는 9월 백신 임상실험에 들어가 내년 초 생산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덕분에 주가는 어제 8%, 오늘도 1.41%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백신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갖지말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1984년 AIDS가 나온뒤 세계 제약업계는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미 보건부의 마가렛 핵클러 장관은 "2년내 임상실험이 가능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후 36년이 넘게 흘렀고, 그동안 300만병이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AIDS 백신은 없습니다.
월가도 이런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지난주 시작된 '릴리프 랠리(Relief Rally)에서 투자자들은 지속적으로 현금 흐름을 창출하면서 배당을 줄 수 있는 기업들을 고르고 있습니다.
JP모간이 주초에 3M 등을 확실한 배당주라면서 이런 주식을 추천했습니다.
미국 기업들이 이번에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게되면 빚을 다 갚고난 뒤 12개월간 배당과 자사주매입도 중단됩니다.
그래서 구제금융을 받지 않고 살아날 수 있는 기업, 그리고 배당과 자사주매입을 지속할 수 있는 기업들을 찾아 매수하고 있는 겁니다. CNBC는 이날 "매수를 시작한 헤지펀드들이 전통대형주에 몰릴 것"이라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만약 투자자들이 'V'자 반등을 믿는다면, 이런 크고 무거운 주식 대신 급반등할 수 있는 경기민감주, 그리고 낙폭과대주 등을 매입할 겁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