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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정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지난 27일 제55회 공인회계사(CPA) 1차 시험 합격자가 발표됐습니다. 응시자 9054명 중 2201명이 1차 합격 문턱을 넘었습니다. 이번에 통과된 CPA 합격자들보다 더 기뻐했던 곳이 있었으니, 바로 CPA 위탁시행기관인 금융감독원과 주무관청인 금융위원회였는데요.
매년 치러지는 CPA 시험이지만 올해는 유독 긴장감이 높았습니다. 1차 시험일인 지난 달 23일 직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지난 달 20일 104명에서 21일 204명, 22일 433명으로 급증했습니다.
일단 시험을 계획대로 치르기로 했던 금융당국은 전날 자정까지도 시험 취소 여부를 고민 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시험 사흘 전 대구에 거주하는 시험응시생이 자가격리 대상에 들어가는가 하면 시험장소에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소문이 도는 등 여기저기서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회계사 시험을 연기하면 많은 희생이 뒤따를 것이란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회계사가 될 꿈을 안고 장기간 시험을 준비해온 수험생들에게 불확실성을 안겨줄 수 밖에 없습니다. 시험 문제 유출을 막기 위해 시험날까지 휴대전화도 없이 격리돼있는 출제위원들에게 추가적인 희생을 요구해야하고요, 신(新) 외부감사법 시행으로 증가하고 있는 회계사 수요를 맞추는 것도 신경써야할 부분이었습니다.
시험 당일, 여러차례 시험장 소독을 한 뒤 마스크와 장갑을 낀 금감원 직원 354명이 전국 7개 시험장에 배치됐습니다. 금융위도 사상 처음으로 회계사 시험장에 출동했습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김태현 사무처장, 자본시장국 담당자들이 시험장을 찾았습니다. 은 위원장은 코로나19에도 묵묵히 업무를 수행하는 수 백명의 감독원 직원들을 치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금감원의 한 직원은 "금융위원장의 인정을 받으니 초라한 경영평가 등급으로 성과급이 삭감됐던 서러움이 누그러지는 듯 하다"고 말했습니다. 금융위는 지난 2017년과 2018년 금감원에 대한 경영평가에서 2년 연속 C등급을 줬고 지난해 B등급으로 한단계 상향했습니다.
긴장 속에 1차 회계사 시험 3교시가 진행되던 오후 4시30분 코로나19 재난 대응단계가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됐습니다. 그 뒤로 예정돼있던 행정고시 1차 시험 등 국가고시는 줄줄이 연기됐습니다.
무탈하게 회계사 1차 시험이 끝나자, 금감원 내부에선 금융위에 대한 결단력을 재평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금융위가 자칫 책임을 떠안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회계사 시험을 치르기로 결단내린 것은 결론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겁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그동안 여러 사안에 대해 각을 세우던 금융위와 금감원이 회계사 시험을 계기로 이렇게 대동단결하게 될 지 몰랐다"고 말하더군요. 흡사 2015년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진웅섭 전 금감원장에 '금융개혁 혼연일체'라고 쓰여진 액자를 선물한 당시 분위기로 돌아간 것 같다는 겁니다. 이런 금융당국간 적당한 긴장과 협조의 관계가 유지됐으면 좋겠다는 덕담도 곁들이면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아직 마음을 놓기는 이릅니다. 회계사 2차 시험이 6월 27, 28일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리고 코로나19로 촉발된 초유의 경제위기가 닥쳐오고 있습니다. 코스피 지수는 10년 전 수준을 찍었고 기업 자금조달 길이 얼어붙는 등 금융시장이 급격히 경색되고 있습니다. 금융에 이어 실물 경제도 멈춰 서면서 상반기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금융위와 금감원 의 혼연일체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입니다. (끝)/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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