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8시30분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는 서울 남대문로 한진빌딩 26층 대강당에는 100여 명의 주주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정규 좌석에 빈 자리를 찾을 수 없어 접이식 간의 의자를 더 채워야 했다. 앞서 열린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정기 주주총회가 코로나19 사태로 한산한 것과는 상반된 분위기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 마스크를 쓴 주주들은 차분한 분위기에서 주총이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총장 참석에 앞서 주주명부를 확인하는 책상 앞에도 주주들이 늘어섰다. 직원들은 주총장에 들어서는 주주들의 체온을 소형 체온계로 일일이 쟀다.
이날 열리는 주총에서는 한진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반(反) 조원태 3자 주주연합’(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KCGI·반도건설)이 경영권을 둘러싸고 표 대결을 벌일 예정이다.
주총에서는 감사 및 영업보고, 최대주주 등과의 거래내역 보고, 재무제표 승인, 사외 및 사내 이사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정관 일부 변경 등의 안건을 의결한다.
조 회장 측과 3자 주주연합 간 가장 첨예한 표 대결은 조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놓고 벌어질 전망이다. 차기 이사회 후보군으로 한진그룹은 조 회장 외에 신규로 6명의 이사 후보를 제안한 상태다. 3자 주주연합은 김신배 포스코 이사회 의장 등 7명의 이사 후보군을 추천했다. 한진칼의 사내이사 선임은 일반 결의 사항인 만큼 출석 주주 과반의 찬성을 얻으면 안건이 통과된다.
재계에서는 조 회장이 유리한 고지에 선 것으로 보고 있다. 주총을 하루 앞두고 의결권 유효 지분 2.9%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에서 조 회장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수탁위에서 조 회장을 비롯해 하은용 대한항공 부사장,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등 한진그룹이 추천한 이사 후보 7명 전원에게 찬성표를 던지기로 했다.
또한 반도건설이 이번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이 8.2%에서 5%로 줄어든 상태란 점도 조 회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24일 반도건설이 고의로 허위공시를 했다고 판결, 3자 주주연합이 주총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이에 조 회장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재계는 무게를 두고 있다. 국민연금(2.9%)을 포함한 조 회장 측이 확보한 지분은 36.6%로 3자 주주연합(28.78%)과 약 7.82%포인트의 격차가 벌어졌다. 조 회장의 우호지분은 본인(6.52%)과 모친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5.31%), 동생 조현민 한진칼 전무(6.47%) 등 조 전 사장을 제외한 일가 지분과 특수관계인(4.15%) 지분에 사업상 협력관계를 맺은 미국 델타항공(10.00%), 카카오(1.00%), GS칼텍스(0.25%) 등을 더한 수치다. 의결권 기준 한진칼 지분 3.7%를 보유한 대한항공 자가보험·사우회 등이 조 회장 편에 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양측의 격차는 더욱 클 상황이다.
대한항공 자가보험·사우회 지분을 합치면 조 회장 측 우호지분은 40%를 넘기게 된다. 지난해 한진칼 주총의 주주 참석률(77.18%)에 비춰 올해 참석률을 80%로 가정한다면 안건 통과를 위한 최소 수준의 지분을 확보했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다만 지분 25%에 해당하는 소액주주와 기관투자가의 지지 여하에 따라 이날 경영권 향배는 최종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한항공 주총에서 고(故)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이 부결된 전례가 있는 만큼 한진그룹은 노조까지 나서 조 회장의 재선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3자 주주연합은 조 회장을 비롯한 현재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하며 막판까지 소액주주 표심을 잡기 위해 여론전을 펼쳤다.
한편, 조 회장측과 3자 주주연합은 올 들어 추가로 지분을 사들이며 '장기전' 대비에 나선 상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향후 임시주총 소집 등을 통해 경영권 분쟁이 이어질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3자 주주연합은 KCGI와 반도건설을 주축으로 지분을 추가로 늘려 총 42.13%(지난 24일 기준)를 확보했다. 조 회장 측의 백기사인 델타항공은 기업결합신고 기준(15%) 직전인 14.9%까지 지분을 늘렸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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