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혁신은 전쟁 기간에 많이 일어난다. 전자레인지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레이더, 인터넷이 모두 전시 중에 개발됐다. 성형수술도 1차 세계대전 때 나온 것이라고 한다. 글로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또한 혁신 관점에선 기술이 많이 개발되는 시기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는 당장 급하게 필요한 물품과 기기가 많다. 이때엔 기존 기술과 상품, 제작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바로 신제품에 쓸 수 있는 혁신이 일어난다. 스타벅스 매장 등에서 활용하던 드라이브 스루를 진단 검사에 도입한 게 대표적 사례다.
이런 종류의 혁신에서 최근 주목받는 게 3D(3차원)프린터다. 3D프린터는 디지털화된 파일로 입체 물건을 만들어내는 기기다. 원격지에서도 설계에 따라 프린팅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이런 장점이 팬데믹에서 쓰이고 있다. 당장 인공호흡기와 안면보호장치(페이스 실드)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미국과 유럽에서 3D프린터 이용이 활발하다.
미국의 자동차 기업 포드는 의료진이 환자를 치료할 때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페이스 실드를 3D프린터로 제작하고 있다. 자동차 제작 공정에서 쓰이던 3D프린터 일부를 개조해 실드를 만들 수 있는 장치로 전환했다. 이렇게 해서 만든 1000개의 보호막은 이미 병원에 보내졌다. 이번주부터 실드 7만5000개가 만들어지고 이후 두 곳의 포드 시설에서 매주 10만 개가 출시될 것이라고 한다. 폭스바겐도 3D프린팅을 통해 이런 실드를 양산해내고 있다.
3D프린팅으로 마스크를 대량 생산해내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미국 미주리주의 한 대학에선 24시간 계속해서 3D프린팅으로 마스크 생산 시스템을 마련해 시제품 생산에 들어갔다. 제너럴일렉트릭(GE) 등도 마스크 제작에 나섰다. 인공호흡기는 3D프린팅의 대표 상품으로 인정받았다. 이탈리아의 병원에서 인공호흡기에 사용되는 밸브가 없자 3D프린터를 이용해 제작한 게 시초다. 이 밸브로 환자 10명의 생명을 구했다고 한다.
중국에선 응급 의사들의 보안경 제작에 3D프린터를 활용했다. 물론 3D프린팅에 문제점도 많다. 의료에 쓸 만큼 안전하고 정교하냐가 관건이다. 하지만 신기술이 개발되기까지 기존 기술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밖에 없는 시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기존 약물에서 찾고 있는 것도 이런 생각에서다. 결국 혁신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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