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내외 생산 현장의 차질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함께 ‘한국인 입국 금지’를 선언한 외국 정부에 ‘기업인 예외 허용’을 설득하고, 외국계 협력사 직원의 비자 체류 기간까지 챙겨야 할 상황이다. 전세기를 수소문해 임직원 수백 명을 한 번에 해외 공장으로 실어나르는 ‘007 작전’까지 벌이고 있다.
정부 설득해 외국인 직원 체류 연장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기업에 가장 시급한 일은 코로나19에 따른 ‘생산 차질’을 막는 것이다. 최근엔 세계 각국이 출입국을 통제하면서 공장 운영에 필수적인 협력사 외국인 직원의 국내 비자까지 챙겨야 할 상황이 됐다는 게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국내 반도체 대기업 A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엔 일본 반도체 장비업체 소속 일본인 직원 2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현재 증설 중인 반도체 공장에 장비를 설치하고 기존 장비의 점검을 담당하는 핵심 인력이다. 대부분 90일짜리 단기취업(C-4) 비자를 갖고 있다.
문제는 지난 9일 한·일 정부가 상대국발(發) 입국자에 대한 ‘2주 격리’ 조치를 발표하면서 터졌다. A사 근무 일본인이 비자 만료로 출국하게 되면 건강증명서 발급, 비자 재신청 기간 등을 더해 국내에 다시 들어오기까지 최소 1~2개월이 걸린다. 증설 일정과 장비 관리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 것이다.
A사는 반도체산업협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에 사정을 알렸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을 만나 절박한 사정을 읍소한 끝에 길이 열렸다. 정부는 지난주 ‘C-4’ 비자를 받고 입국한 반도체회사 외국인 직원들이 출국 후 재입국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체류 기간 연장’에 협조하기로 했다.
전세기 띄워 광저우에 290명 급파
기업들은 핵심 해외 생산기지인 중국과 베트남 정부를 설득해 전문 인력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생산 정상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이날 대한항공 전세기를 띄워 엔지니어 290명을 중국 광저우로 급파했다. 이들은 수율 문제로 정상 가동이 지연되고 있는 광저우의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공장 양산을 위해 파견됐다.
LG디스플레이는 그동안 광저우시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한국발(發) 입국자에 대해 2주간 격리 조치를 내려 소수 인원만 현지에 파견해왔다. 하지만 OLED 양산 막바지 작업을 위해선 대규모 인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광저우에 입국한 임직원은 코로나19 음성 확인서를 발급받았다. 입국에 앞서 22일부터 회사 기숙사에서 합숙생활을 해 감염 우려를 최소화했다. 이들은 광저우에 도착한 뒤 중국에서 추가 검사를 받고 별도 공간에서 일정기간 격리를 거쳐 업무에 투입된다. 회사 관계자는 “이달 안에 가급적 빨리 OLED 패널 양산 준비를 마치고 가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디스플레이도 28일 베트남 플렉서블 OLED 공장 양산을 위해 엔지니어 180여 명을 파견할 2차 전세기를 띄운다. 13일 1차 입국(186명) 때와 같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14일 격리’ 예외를 인정받았다.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 LG그룹 전자계열사 엔지니어 250여 명은 오는 30일 아시아나항공 전세기편으로 베트남에 입국한다. 베트남 북부 하이퐁 공장의 스마트폰·가전 개발, 생산 인력으로 2주간 자가 격리를 마친 뒤 업무에 투입된다.
“기업인 이동 보장” 건의
한국과 미국, 영국 등 16개국 경제단체가 참여한 세계경제단체연합(GBC)도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인의 이동 보장 등을 각국에 건의했다. 전경련은 GBC가 26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고 밝혔다. 이번 성명서는 전경련이 제안하고 각국 단체가 합의해 작성했다. 성명서는 세계무역기구(WTO)와 세계보건기구(WH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B20(비즈니스 20)를 비롯한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에 전달됐다. GBC는 기업인 이동 보장 외에도 △임시적 경제활력 제고 조치 △금융시장 안정화 정책 및 국가별 재정정책 △글로벌 공급망 교란 최소화 등을 제안했다.
20일 현재 외교부에 접수된 한국 기업인의 입국제한 애로사항 건수는 30건(15개국)으로 인원으로는 4000명에 달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임직원이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해외 프로젝트의 차질을 막기 위해 몸을 던지는 상황”이라며 “기업마다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황정수/김보형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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