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빠른 확산과 함께 기업들의 자금난과 금융시장 신용경색이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우량·공기업들의 원화채권과 해외채권 발행도 줄줄이 무산되거나 보류되는 양상이다. 일반투자자 공모까지 마친 기업이 증시 상장을 철회하는 등 심상찮은 사건이 속출하고 있다.
회사채 발행시장은 사실상 기능을 멈췄다. ‘사자’ 움직임이 실종되다시피 해 지난주에 진행된 3건의 회사채 발행은 모두 미달 사태를 빚었다. 여기에는 대기업보다 더 안정적으로 평가받은 시중은행(하나은행)까지 포함돼 충격을 더한다. 문제는 다음달이다. 4월은 기업들이 전년도 결산을 마무리하고 대거 자금 조달에 나서는 시기다. 내달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가 1991년 이래 최대인 6조5495억원에 달해 차환발행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만기 1년 이내 융통어음인 기업어음(CP) 금리가 급등하는 등 단기자금시장도 심상치 않다. 증권회사들이 해외 주가연계증권(ELS)의 기초지수가 폭락하면서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이 발생한 탓에 현금 확보가 다급해져 단기채 처분에 나서고 있어서다. 상반기에 만기 상환해야 할 CP(전자단기사채 포함)가 25조8000억원으로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자금·신용시장 경색은 국채와 회사채 간 금리 격차인 신용스프레드 확대에서도 뚜렷이 감지된다. 이달 초(3일) 0.608이던 신용스프레드는 지난 주말 0.838로, 불과 보름여 만에 37% 확대됐다. 금융시장 재앙의 전조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지표다. 산업은행이 지난달 10일 글로벌본드 15억달러 발행 후 국내 은행의 외화채권 발행도 전멸해 민간 달러 확보 길이 막혔다. 국내외 신용평가사들로부터 한국 간판기업들의 신용등급 강등과 강등 경고가 속출하고 있는 점도 불길하다.
기업들의 건전성과 수익성이 무너지면 코로나 충격 극복이 요원하다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그런데도 당국의 움직임은 굼뜨기만 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소상공인·중소기업 지원과 재난기본소득 도입에 매달릴 뿐, 경제 전반의 신용경색 해법에는 소홀하다. “한국은행이 유동성 공급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는 발언은 방관자처럼 들리기도 한다. 한은 역시 신용경색 해소를 위한 선제 대응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CP 대량 매입을 선언하고, 회사채 시장 개입을 검토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1.0%로 추락할 것이란 해외 기관의 전망이 나올 만큼 우리 경제는 퍼펙트스톰(여러 악재의 동시 발생)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채권시장안정펀드·증권시장안정펀드·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등의 대책은 신용경색을 풀고 시장 신뢰를 회복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비상경제시국 대처보다 현금 살포와 생색내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일본은 100조원대의 법인세 납부를 1년 유예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대통령이 강조한 ‘전례 없는 대책’과 ‘신속·과감한 행동’이 말로만 그쳐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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