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의 공포가 세계 금융시장을 덮치고 있다. 주식뿐 아니라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 국채, 금까지 동반 추락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으로 번지면서 각국 경제 활동이 줄줄이 중단되고 있는 데다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불신까지 커지고 있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책 차원에서 유럽과의 통행을 금지한 건 글로벌 경기둔화와 각국 간 갈등을 심화할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뉴욕증시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9.99% 떨어진 21,200.62에 거래를 마쳤다.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22.6%) 이후 최대 낙폭이다.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도 10% 가까이 미끄러졌다.
몇 시간 앞서 마감한 유럽 증시의 낙폭은 10%를 웃돌았다. 범유럽지수인 유로 스톡스50지수는 12.40% 급락했고, 영국 런던증시의 FTSE100지수는 10.87% 하락해 1987년 이후 하루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독일 DAX지수(-12.24%)와 프랑스 CAC40지수(-12.28%) 역시 두 자릿수 하락률을 기록했다.
미국과 유럽을 거친 공포는 아시아 증시에도 몰아쳤다. 일본 도쿄증시에서 닛케이225지수는 6.08% 하락한 17,431.05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지수 19,000선이 무너졌던 닛케이225지수는 장중 전일 대비 10.1% 급락한 16,690.60까지 밀렸다. 1990년 4월 이후 30년 만의 최대 낙폭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2016년 11월 이후 3년 4개월 만에 지수 17,000선이 뚫리기도 했다. 중국과 대만, 홍콩 증시에서도 하락세가 이어졌다. 미국 정부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곧 발표할 것이란 소문이 퍼지면서 이날 오후 아시아 증시에서 낙폭이 다소 줄어든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국제 유가도 폭락세를 이어갔다. 서부텍사스원유(WTI)는 배럴당 1.48달러(4.5%) 하락한 31.50달러, 브렌트유는 배럴당 2.57달러(7.2%) 급락한 33.22달러를 기록했다.
주가 등 위험자산이 하락할 때 통상 오르는 미 국채와 금 등 안전자산도 폭락하고 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4월물은 온스당 3.2%(52달러) 내린 1590.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사흘째 하락세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0.025%포인트 올라 연 0.842%에 거래를 마쳤다.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
극도의 공포 속에 모든 자산이 급락하면서 대규모 마진콜(증거금 추가 납부 통지)과 청산매매(투자자가 마진콜에 응하지 않으면 거래소가 강제로 반대매매하는 것)가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과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국이 침체에 들어갈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중국은 올 1분기 10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기울 것이란 추정이 확산되고 있다. JP모간은 미국이 올해 침체에 빠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블룸버그는 코로나19 위기는 대공황 때와 경제적으로 가장 비슷하다고 보도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2020년의 위기는 정말 독특하고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글로벌 불황의 가능성은 적어도 80%”라고 진단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과학자와 의학계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보건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며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크리스 럽키 MUFG 전략가는 “대공황은 각국 간 무역장벽을 세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유럽과의 통행 단절은 또 다른 대공황의 가능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코로나19 확산이 세계 금융위기로 이어진다면 그 시작은 이탈리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의 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35%에 달해 주요국 중에선 일본 다음으로 높다. 이날 이탈리아의 FTSE MIB지수는 16.92% 급락해 1998년 이 지수가 나온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뉴욕=김현석/도쿄=김동욱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