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사슬망 관리란 제품 원자재 생산부터 소비자에게 제품이 전달되기까지 모든 과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 관리 기술은 삼성전자, LG전자 등의 핵심 경쟁력으로 이론, 현장 경험, 기술적 노하우가 필요한 영역이다.
대학의 공급사슬망 수업 시간엔 개념 이해를 돕기 위해 맥주게임(beer game)이란 활동을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대학원에서 처음 고안한 ‘맥주 생산-도매-소매-판매’를 시뮬레이션해보는 게임이다. 각 회사가 재고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경우와 비교해 정보를 공유했을 때 전체 매출과 물량, 공급 효율이 상당히 올라가는 것을 학생들은 체험한다. 정보 교환을 통해 시장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모든 참여자가 유리하게 되는 공급사슬망의 기본 개념을 파악하게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는 가운데 마스크와 의료 보급품 문제로 계속 시끄럽다. 국내 마스크 생산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자 정부는 마스크 제조업체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급사슬망 이론에 따르면 이는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예를 들어 마스크 생산량이 하루 1000만 장이고, 수요도 하루 1000만 장에 도달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천만에! 공급사슬망 이론에 따르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공급이 많아도 수요를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 마스크가 충분하다는 믿음이 있는 상황이면 다섯 장이 필요한 사람은 다섯 장만 구매하지만, 시장에 마스크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필요 이상을 사들여 수요 왜곡이 생겨나는 것이다. 더구나 마스크 핵심 원부자재는 생산 공정이 까다롭고 복잡한 인증 절차도 있다.
배분 문제도 존재한다. 같은 상품이 한 매장에선 없어서 못 팔아도 옆 동네 다른 가게에는 남아도는 경우처럼 수요의 시기와 장소에 맞춰 정확히 제품이 배분되지 않으면 전체 시장의 수요량만큼 공급량이 투입된다고 해서 시장을 충족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면 수요의 왜곡, 원부자재 수급, 물량 배분 과정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없을까? 공급사슬망 이론에 따르면 유통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유통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앞에 설명한 맥주게임과 같이 각 매장에 재고가 얼마나 있으며 최대 생산 가동률은 얼마나 되는지를 공유하는 방법이다. 사재기를 막고 시장에 믿음을 줘 수요 왜곡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것이다.
두 번째는 마스크 원단을 정부가 책임지고 제조사에 배분하는 것이다. 현재 공급사슬망에서 가장 큰 위협은 원자재 수급이다. 정부가 마스크 생산을 다그치기에 앞서 원부자재를 일괄 구매해 생산업체에 배분한다면 시장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즉, 한쪽 생산업체에는 원부자재가 남아돌고 다른 생산업체는 없어서 못 만드는 비효율을 제거할 수 있다. 공급사슬망에서 위험을 한데 모아 관리하는 위험 분산(risk pooling) 이론에 근거한다.
정부의 직접적인 원부자재 관리는 또 다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바로 ‘병목 관리’다. 제조사가 수급 문제로 기존과 다른 원부자재를 사용할 때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가 필요하다. 즉, 전체 과정에 병목이 생길 수 있는데 이 부분의 효율 증대에 집중해야 한다. 공급사슬 이론의 ‘병목 관리 역량 집중’에 해당한다.
앞에 나열한 해결책인 정보 공유, 위험 분산, 병목 관리는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물론 이론과 실제 현장 적용에는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정부는 이런 과정을 개선할 수 있는 정보와 자원을 갖추고 있다는 것과 국내 디지털 역량을 모은다면 관리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대만은 초기에 위생복리부가 가진 정보를 공개했고, 이를 이용해 민간이 실시간 재고 정보를 공유하는 앱을 제작해 배포할 수 있었다. 또 공장의 생산량과 원자재 수급, 지역별 수요를 최적화해 적시 적소에 배포하는 기술은 학계가 확보하고 있으며 국내 산업계에서도 그 효용성을 기업 경쟁력으로 활용한 사례가 많다.
코로나19에 맞서 장기전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투가 전장의 군인 간 힘의 대결이라면 전쟁은 보급물자 공급 경쟁이라고 한다. 보급물자의 안정적인 공급은 장기전을 대비할 때 필수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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