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20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7명(한은 총재·부총재 포함) 가운데 4명의 임기가 끝난다. 금통위원들은 우리나라 통화정책의 방향을 결정해 ‘7인의 현인’이라 불린다. 이들이 정하는 기준금리에 따라 대한민국 ‘돈의 질서’가 바뀐다. 이들은 정부 차관급 예우와 3억2530만원(2018년 기준)의 연봉을 받는다. 여기에 업무추진비, 차량지원비 등을 합하면 5억원에 육박한다. 권력과 명예를 동시에 누리는 만큼 학계는 물론 경제관료들도 눈독을 들이는 자리다. 그만큼 정부로서는 ‘코드 인사’의 유혹을 크게 받는 곳이기도 하다. 벌써부터 자천타천으로 10명이 넘는 인사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그 어느 때보다 통화정책의 일관성과 전문성을 뒷받침할 인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체 앞둔 금통위, 금리 인하 유력9일 한은 등에 따르면 한은은 다음달 임기가 만료되는 조동철·고승범·신인석 금통위원의 후임을 추천해달라는 공문을 최근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대한상공회의소에 송부했다. 한은도 같은 시기 임기가 끝나는 이일형 금통위원(한은 총재 추천) 후임자를 내부적으로 물색하고 있다. 후임 금통위원은 한은 총재와 기재부 장관, 금융위원장, 대한상의 회장이 1명씩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한은은 이르면 이달 말 각 기관 추천 인사를 발표할 예정이다.
기존 금통위원 임기 만료를 앞두고 통화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금통위 회의는 4월 9일 한 차례만 남았다. 시장 전문가들은 금통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르면 이달 임시 금통위를 열어 인하 시기를 앞당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통화정책 운용에 익숙하지 않은 새 금통위원들을 대신해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 카드를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금융연구센터·통화금융연구회 주목금융계의 하마평을 종합하면 조순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중심으로 하는 조순학파,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가 주축이 된 학현학파 출신 인사가 대거 후임 금통위원 물망에 오르고 있다. 조순학파 가운데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가 대표적이다. 조 전 부총리의 제자인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1989년 결성한 한국금융연구센터에서 활동하는 곽노선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등도 후보로 꼽힌다. 변 교수의 아호인 학현(學峴)에서 비롯한 학현학파 인사 가운데는 원승연 금융감독원 부원장,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의 하마평이 무성하다. 학현학파는 분배와 경제 성장의 조화를 강조한 학풍으로 진보 경제학자들의 요람으로 꼽힌다. 소득주도성장을 설계한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이 학현학파로 분류된다.
한은이 운영하는 통화금융연구회 출신 인사도 주목받고 있다. 1995년 4월 7일 출범한 이 조직은 한은 직원과 외부 학계 인사들이 모여 분기별로 한 차례 금융·경제 문제를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함준호 전 금통위원과 조동철·임지원 금통위원이 통화금융연구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조직의 운영위원 가운데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강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부원장 등이 금통위원 후보로 꼽힌다.
관가에서는 차영환 국무조정실 2차장,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 유광열 금감원 수석부원장, 최훈 금융위 상임위원 등이 거론된다. 한은 출신 인사로는 장병화 전 부총재, 서영경 대한상의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원장,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이 하마평에 오른다. 이 밖에 박재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등도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한 대학의 경제학부 교수는 “정치권에 인맥이 있거나 현 정부 자문에 응한 사람들이 금통위원으로 유력하다는 풍문이 많다”며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인사를 뽑는 것은 물론 자질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