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검찰청의 한 검사는 최근 사건 관계인에게 출석할 것을 요구했다가 “요즘 열이 나는데 아무래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것 같다”는 대답을 들었다. 검사는 꾀병을 부리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지만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비해 조사 일정을 미뤘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검찰 수사가 차질을 빚고 있다. 검찰이 자체적으로 대면 조사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자제하고 있는 데다 소환조사를 하려고 해도 코로나19 핑계를 대며 출석하지 않는 일까지 발생하면서다.
서울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검사는 “사건 관계인이 특별한 말을 하지 않더라도 요즘 같은 상황에 조사받으러 오라고 말하기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피의자가 아니라 참고인이라면 더 그렇다”고 했다. 한 부장검사도 “서면이나 전화로 조사를 대체하기엔 한계가 있어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대면 조사 일정을 늦추고 있다”고 말했다.
대검찰청은 일선 검찰청에 강제수사를 자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대검은 지난달 21일 일선 검찰청에 소환조사 최소화 등을 지시했는데 5일 이 같은 방침을 2주 더 연장하기로 했다. 대검은 압수수색을 자제할 것과 불가피하게 압수수색을 할 경우 마스크와 일회용 장갑 등 보호장비를 꼭 착용하라고 지시했다.
법조계에선 안 그래도 급증하고 있는 검찰 미제사건이 코로나19 영향으로 올해 더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검사는 고소·고발 사건은 사건 접수 3개월 안에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기준 3개월이 넘도록 처리하지 못한 미제사건은 8만7748건이었다. 2016년 말 기준 4만2680건에 불과했던 미제사건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법조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고소·고발 등 민생사건 처리가 주로 지연돼 서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코로나19 관련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코로나19 상황 관련 법률상담팀’을 운영한다고 이날 밝혔다. 최근 마스크 대금 사기 등 코로나19 관련 범죄가 발생하면서 사회·경제적 약자에 대한 법률구조 지원 필요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인혁/안대규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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