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2,455.91

  • 48.76
  • 1.95%
코스닥

678.19

  • 16.20
  • 2.33%
1/3

[최형순의 과학의 창] 코로나 공포와 콜레라 毒氣論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상이 뒤숭숭하다. 사람들로 붐벼야 할 곳은 휑하고, 더러 눈에 띄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끼고 서로 눈치만 본다. 모두가 이웃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듯하다. 사실 이 두려움은 본질적으로는 미지에 대한 공포다. 병원균이 눈에 보여서 누가 보균자이고 비보균자인지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기침 따위가 무서울 이유가 없지 않은가.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때문에 이웃을 무서워하게 됐을까? 이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19세기 영국 런던으로 가보자. 산업혁명 직후 런던은 급속한 산업화와 인구 증가가 맞물려 환경오염이 심각했다. 그로 인해 콜레라를 비롯한 다양한 질병이 만연하게 됐다. 19세기 전반부에만 콜레라로 인구 250만 명의 도시 런던에서 1만5000명 가까운 사망자가 나왔으니 당시 런던 사람들이 느꼈을 공포는 쉽사리 상상이 가지 않는다.

'콜레라=수인성 질병' 밝힌 스노

콜레라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은 당대 의학자의 큰 과제였다. 콜레라의 원인에 대해 다양한 가설이 있었는데,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 가설은 독성을 품어 악취가 나는 공기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독기론(毒氣論)이었다. 그렇지만 독기론은 허점이 많았고, 이를 의심한 이가 바로 근대 역학(疫學)의 아버지인 존 스노다.

1840년대 런던의 콜레라 발병 건들을 면밀히 분석한 스노는 템스강 상류 상수도를 사용하는 가정과 하류의 가정이 발병률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를 바탕으로 스노는 1849년 콜레라가 물을 통해 감염되는 질병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1840년대 말은 ‘모든 냄새는 질병’이라고 주장한 독기론 신봉자인 에드윈 채드윅이 보건국장으로서 공중보건 개혁을 감행한 시기였다. 그런데 채드윅은 콜레라와 관련해 중대한 실책을 저지르고 만다. 집안과 거리에서 악취 나는 오물을 씻어내야 질병의 창궐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배변물을 포함한 다량의 오물이 템스강으로 흘러가는 하수 시스템을 만들었다. 문제는 이렇게 템스강으로 흘러들어간 오물 중에 콜레라 감염자의 배설물이 섞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콜레라균은 사람의 장에서 증식하며 구토와 설사를 일으키고, 그 결과 감염자는 탈수로 죽음에 이른다. 이 토사 배변물이 섞인 물을 다른 사람이 마시면 콜레라가 전염된다. 그런데 공중보건을 명분으로 마련한 하수 시스템은 배설물을 템스강에 충분히 희석시켜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고 오염된 물을 마시게 했고, 결과적으로 런던 콜레라 확산의 주요 원인이 됐으니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다.

1854년 런던 소호 지역을 휩쓴, 2주 만에 지역 인구의 10%에 달하는 사망자를 낸 역대 최악의 브로드가(街) 콜레라 사태가 역사의 전환점이 된다. 스노는 소호 지역 우물들을 중심으로 콜레라 발병자 분포를 면밀히 조사하고 이를 지도에 표시해 콜레라의 주범인 브로드가 우물을 찾아냈다. 다시 한 번 악취가 아니라 특정 성분의 물이 콜레라의 원인임을 밝혀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그 성분, 즉 콜레라균의 존재는 알아내지 못했다. 이탈리아 해부학자 필리포 파치니가 스노 생전인 1854년 콜레라균을 발견했지만 그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스노 사후에 루이 파스퇴르와 로베르트 코흐에 의해 근대 병균론과 세균학이 정립됐고, 우리는 마침내 인간과 인간 사이 전염병의 연결 고리를 이해하게 됐다.

타인을 배려하고 신뢰 회복해야

이런 지식을 갖춘 현세의 우리가 독기론자들의 어리석음을 비웃기는 쉽지만, 독기론을 전혀 근거 없는 미신으로 치부할 일만은 아니다. 배설물이나 상한 음식 등이 질병을 유발하는 이유는 그 안에 서식하는 병원균 때문이다. 병원균은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들이 물질을 분해할 때 부산물로 나오는 황화수소나 메탄 등의 가스에서 사람들이 악취를 느끼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피하게 된다. 즉, 인간은 냄새를 통해 병균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인지하고 기피해 온 존재라는 점에서 ‘모든 냄새는 질병’이라는 주장은 일견 일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본능적 추론을 뛰어넘는 과학적 판단력을 발휘한 스노의 업적은 더욱 빛이 난다.

코로나19 발병 이후 과학자들은 단기간에 바이러스의 염기 서열과 전파 방식 등 많은 것을 알아냈다. 우리가 인터넷 괴담 대신 코로나19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상식으로 갖출 수 있다면 옆 사람에 대한 본능적이고 막연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식으로 무장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손 자주 씻기, 악수 대신 목례하기, 소매로 가리고 기침하기, 밀폐된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하기 등 간단한 생활 수칙을 실천한다면 그리고 그 결과로 타인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면, 그게 우리 사회가 다 함께 역병을 이겨나가는 첫걸음이 아닐까?

최형순 < KAIST 물리학과 교수 >


- 염색되는 샴푸, 대나무수 화장품 뜬다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