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진원지인 중국 우한. 도시 전체가 폐쇄된 상태이지만 현지 의료진은 여전히 병마와 싸우고 있다. 이들의 선택은 360도 촬영이 가능한 웨어러블 기기다. 원격진료 기술을 활용해 대면 접촉에 따른 감염 가능성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중국 최대 통신사 차이나모바일의 지큐브는 최근 한국 스타트업 링크플로우와 가상현실(VR)카메라 ‘핏360’ 납품 계약을 맺었다. 기기 2만 대를 110억원에 공급하는 것이 계약의 핵심이다. 원격진료 규제로 국내 영업이 불가능했던 한국 스타트업이 해외에서 활로를 찾아낸 사례다.
촘촘한 특허로 진입 장벽 쌓아이 제품은 목에 거는 밴드에 탑재한 카메라 세 대로 360도 영상을 구현한다. 전 세계에서 링크플로우만 확보하고 있는 기술이다. 방호복을 입은 관리자가 ‘핏360’을 착용하고 환자 상태를 촬영하는 게 첫 단계다. 확보한 영상을 5세대(5G) 이동통신망을 통해 의료진에 전송하는 방식으로 감염자를 가려낸다. 현재 우한 인근 도시에서 핏360 10대를 활용한 테스트가 이뤄지고 있다. 2만 대의 물량이 이번주부터 순차적으로 우한에 공급된다.
링크플로우는 삼성전자 사내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C랩’에서 출발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전략기획을 담당하던 김용국 대표가 360도를 촬영할 수 있는 기기를 구상해 사내 아이디어 콘테스트에서 1등을 차지한 게 시작이었다. “하와이 신혼여행 때 핏360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아름다운 풍경을 모두 담을 수 있는 기술을 고민하다가 사내벤처를 만들게 됐습니다.”
첫 제품은 C랩에서 스핀오프(분사)한 지 2년여가 지난 2018년 말에 나왔다. 보안 시장을 겨냥한 ‘넥스360’ 1세대였다. 현재 이 제품은 야간 촬영과 안면 인식, 8시간 촬영 등이 가능한 3세대까지 진화했다.
완제품이 나오기까지 진통이 적지 않았다. 첫 장벽은 발열이었다. 익스트림 스포츠 애호가들이 즐겨 쓰는 액션캠은 발열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손잡이를 쥐거나 헬멧 등에 장착하는 형태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맨살에 닿는 웨어러블 카메라는 사정이 다르다. 온도 조절이 안 되면 착용이 불편하고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김 대표는 “사람으로 치면 손발을 묶고 달리되 숨이 차면 안 된다는 조건을 붙인 셈”이라고 했다.
애써 개발한 제품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안경형 카메라가 대표적인 실패작으로 꼽힌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머리를 심하게 흔든다는 점을 뒤늦게 알았어요. 영상이 흔들려 쓸 수 있는 게 많지 않더라고요.”
링크플로우 엔지니어들은 목에 거는 ‘넥밴드’라는 새로운 길을 택했다. 목에 두른 카메라는 장점이 많다. 두 손이 자유롭고 촬영자가 찍히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인 영상을 확보할 수 있다. 넥밴드형 핏360이 시장에 나온 것은 지난해 7월이다. 5G 환경에서 실시간으로 영상을 전송할 수 있다. 구현할 수 있는 해상도도 UHD급인 4K(가로 3840×세로 2160)에 이른다. 링크플로우는 핏360과 관련한 국내외 특허 20여 개를 보유 중이다. 특허 장벽을 촘촘히 쌓아 유사품이 나오기 어렵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미국 부동산 업체들 핏360 찾는 수요 늘어링크플로우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2018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CES 혁신상’을 받았다. 글로벌 시장에서 혁신성을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올해는 ‘핏360 라이브’(FITT360 LIVES)로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부문과 스마트시티 부문에서 두 개의 상을 거머줬다.
이 회사의 올해 목표는 글로벌 시장 공략이다. 중국 지큐브엔 핏360과 넥스360을 모두 납품할 계획이다. 두 제품 계약액을 합하면 250억원 안팎에 달한다. 미국은 부동산 업체들을 중심으로 핏360을 찾는 수요가 늘고 있다. 면적이 넓어 일일이 매물을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곳에서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미국 시장 유통은 일본 카메라 업체인 캐논이 맡는다.
김 대표는 “올해는 보안용 제품인 넥스360 모델을 다양화하는 데 힘쓸 계획”이라며 “웨어러블 카메라인 핏360의 다음 세대 제품은 내년 하반기쯤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