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상황을 큰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대구에서 병상 부족 등의 문제가 생기면 분야마다 담당할 사람을 즉시 정해 역할을 분담해야 하는데 이런 조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전병률 전 질병관리본부장(차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의 평가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4000명을 넘어서고 이 중 88%가 대구·경북지역에 집중되면서 이곳은 재난상황을 맞았다. 하지만 현장 상황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의료자원이 부족해 집에서 대기하던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다.
의료계에서는 감염병이라는 전쟁이 벌어졌는데 정부 대응이 지나치게 느린 데다 핵심을 짚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을 맡은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달 26일 현장 지휘를 위해 대구에 내려갔지만, 대구시는 2일에도 의료인력 및 병상 부족 문제를 호소했다. 현장 컨트롤타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대구에서 제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는 환자가 속출하지만 정부 지침 마련은 늦어지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사태 초기부터 환자 급증 상황을 대비해 코로나19 환자 간 의료전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경증환자와 중증환자를 구분해야 한다는 감염학회 성명이 나온 것은 지난달 22일이다. 하지만 정부가 관련 지침을 시행한 것은 9일이 지난 이달 2일부터다. 의료자원이 부족해 집에서 대기하다 숨진 환자가 대구에서만 4명 넘게 나온 뒤다.
정부의 늑장대응으로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의료계에서는 정부가 전문가들의 조언을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려 한다는 비판까지 빗발치고 있다. 감염병과의 전쟁을 위해 치열한 속도전이 벌어지는데 정치적 득실만 따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보건복지부 내 행정직 공무원이 득세하고 의사 출신 공무원이 밀려난 것도 걸림돌이라고 했다. 의사 출신 공무원이 설 자리를 잃으면서 질병관리본부가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대구 상황을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으려면 정부가 감염병 전시 상황에 맞게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문했다. 전 교수는 “대구에 병실이 부족하고 심각한 상황이면 총리가 나서서 병상을 지정하면 된다”며 “감염병 위기경보 심각 수준에서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하는 것이 총리의 권한”이라고 했다.
김우주 전 대한감염학회 이사장(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은 “전쟁터에서 복잡하게 ‘이것 하라, 저것 하라’고 해서는 이길 수 없다”며 “복잡하고 다층적인 상황에서는 메시지가 단순명료해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