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 여러분과 해당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삼성이 과거 미래전략실이 임직원의 시민단체 기부금 내역을 무단으로 열람한 것에 대해 28일 공식 사과했다. 최근 출범한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요구를 받아들인 첫 조치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17개 삼성 계열사는 이날 공식 사과문을 통해 “임직원이 후원한 10개 시민단체를 ‘불온단체’로 규정하고 후원 내용을 동의 없이 열람한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명백한 잘못이었음을 인정한다”고 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혐의 재판 과정에서 삼성 미래전략실이 2013년 진보성향 시민단체를 불온단체로 분류하고, 계열사 임직원이 이들 단체에 후원한 내용을 파악한 사실이 검찰을 통해 확인됐다.
삼성은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경영진부터 책임지고 앞장서서 대책을 수립하고 이를 철저히, 성실하게 이행해 내부 체질과 문화를 확실히 바꾸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삼성 "과거의 잘못과 관행, 확실히 정리하겠다"삼성이 28일 임직원의 시민단체 후원 내역을 무단 열람한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한 것은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옛 미래전략실이 임직원의 후원 내역을 무단으로 들여다본 것은 7년 전인 2013년의 일이다. 미래전략실은 2017년 2월 해체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과거를 확실하게 정리하고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분석이다.
이번 사과는 지난 5일 공식 출범한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의견을 수용해 이뤄졌다. 진보 성향의 김지형 전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준법감시위는 대외 후원금 지출과 내부거래, 최고경영진 등의 준법 의무 위반 여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출범 이전에 발생한 사건은 엄밀히 따지면 준법감시위가 판단할 대상은 아니다. 이미 책임자에 대한 사법절차도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준법감시위는 13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이 사건에 대해 강한 우려를 밝히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경영진도 준법감시위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삼성은 “임직원에게도 회사의 잘못을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며 “그동안 사회와의 소통이 부족해 오해와 불신이 쌓였던 것이 이번 일을 빚게 한 원인이 됐다는 점 또한 뼈저리게 느끼며, 깊이 반성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민단체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교류를 확대해 국민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부합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준법감시위가 첫 성과를 내면서 삼성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삼성은 그동안 해묵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도체공장 백혈병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중재위원회의 중재안을 이견 없이 수용했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직원들의 정규직화 요구도 받아들였다.
창립(1938년) 이후 80년 넘게 유지해 온 ‘무노조 경영’ 원칙을 포기했다. 지난해 12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직후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대국민 사과문을 내고 “노조에 대한 시각과 인식이 국민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삼성전자 삼성화재 삼성디스플레이 등 계열사에 잇달아 노조가 설립됐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