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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경제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야기'에 귀기울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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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모토 사토시는 2008년 비트코인을 개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만났다는 사람은 없다. 그저 이메일로만 사람들과 소통했다는 신비의 인물이다. 그는 2010년 비트코인 프로젝트에서 손을 뗐다. 시장에선 그의 정체에 대해 온갖 이야기가 떠돌았다. 가상화폐인 비트코인도 신비스럽긴 마찬가지다. 컴퓨터 알고리즘이 화폐로 탄생한 개념이다. 이런 신비한 스토리를 담은 비트코인에 일반인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시장은 현실에 쓰이지 않는 알고리즘 체계를 신뢰하지 않았다. 수년간 사람들에게서 잊혀졌다. 그러다가 2017년 비트코인은 다시 부활했다. 일부 국가에선 비트코인을 공식 화폐로 인정하기도 했다. 비트코인에 도전하는 투자자들은 마치 미스터리와 난제에 도전하는 탐험가와 같은 모습을 띠었다.

2013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가 최근 《이야기 경제학(Narrative Economics)》(프린스턴대 출간)을 펴냈다.

‘이야기 경제학’은 경제학이 보이는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의 원초적 행동인 이야기에서 경제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이해하려 한다. 일반 경제학자들이 인간의 합리적인 행동을 이해하고 맥락화하기 위해 수학 기호를 쓰는 방정식 모델을 세우는 데 바쁜 반면 ‘이야기 경제학’은 인간의 관심사에 고개를 돌린다. 사람들이 잊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경제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한다.

실러는 비트코인도 이같은 이야기 경제의 범주에서 설명하려 한다. 그는 “비트코인에 대한 열광은 마치 잘 짜여진 하나의 각본 같다”고 설명한다. 그는 비트코인의 인기를 150년 전 유럽과 미국에서 일었던 ‘바이메탈리즘(Bimetallism·복본위제)’ 유행에 비유했다. 복본위제는 금과 은을 통화의 표준으로 삼는 제도였다. 두 금속의 가치가 수시로 변하는 점을 감안하면 안정적인 운용이 어려운 제도였지만 사람들은 빠져들었다. 그속에 스토리가 있고 서사(敍事)가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비트코인을 통해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과 컴퓨터가 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개념, 국가의 무능에서 해방된 글로벌리즘을 얘기한다. 그는 “분명 모순적이고 합리적이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이야기의 플롯에 따라 행동하려 한다”며 “이런 이야기는 경제적 사건만을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는 노래처럼 인간의 감정을 이끌어내고 행동을 재촉한다”고 강조한다.

실러 교수는 이 책에서 경제학자들의 오류도 지적한다. 그는 “경제학자들이 국내총생산이나 임금, 금리, 세율과 같은 경제지표의 변화 데이터만 보고 주요 경제 사건을 이해하려고 하면 근본적인 변화의 동기를 놓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학자들은 어떤 경제적 사건이 발생할 경우 중앙은행 정책이나 소비자 신뢰, 팔리지 않은 재고 등을 조사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주요 지표들이 변화한 원인이 무언지를 묻는다면 그들은 대부분 침묵하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실러 교수에 따르면 일반인들은 오히려 뉴스를 재해석하는 수많은 대화에 참여하면서 경제적 사건을 재인식한다. 이들은 새로운 플롯과 시나리오를 따른다. 1974년 발표된 래퍼곡선 이론도 마찬가지다. 이 이론은 원래 세율이 높아지면 일을 덜 하게 돼 국민소득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레이건 대통령 시절 이 이론은 감세를 하면 오히려 세수가 증가한다는 논리로 바뀌었다. 이후 래퍼 곡선은 감세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론으로 바뀌었다.

저자는 ‘이야기 경제학’이 정치적인 측면을 반영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저축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은 경제학적으로 합리적이지 않음에도 18세기 이후 정치적 목적에 의해 계속 키워졌다. 거대 은행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결국 집값은 오르기만 하고 내려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낳았다. 거대 은행들은 그것을 믿고 마치 정부가 그들 뒤에 있는 것처럼 돈을 빌려줬다.

저자는 ‘이야기 경제학’의 반복성도 강조한다. 이야기는 세대에 따라 약간의 플롯을 달리해 반복적으로 회자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사의 형태를 띠는 폰지 사기나 금융 투기들은 역사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실러 교수는 “경제의 발전과 후퇴에 대한 인간의 사고 패턴을 이해하는 데 이야기만큼 값진 게 없다”며 “경제 사건 뒤에 숨겨진 인간 현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기법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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