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육군 대위였던 니콜라스 조셉 퀴뇨가 무거운 대포를 옮기기 위해 증기엔진 자동차를 만든 때는 1765년이다. 바퀴는 3개였고 실제 사용은 그로부터 4년 후인 1769년 시작됐다. 퀴뇨의 증기차는 증기기관 수레라는 뜻에서 ‘파흐지 펫베어(fardier a vapeur)’로 불렸다. 1770년 4t짜리 화물을 한 시간에 7.8㎞까지 견인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는데, 덕분에 세계 최초의 트럭으로 기록됐다.
이후 1881년 프랑스 자동차회사인 드 디옹 부통은 세미 트레일러를 만들어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프랑스와 미국에 팔았다. 물론 1895년 칼 벤츠가 기름을 직접 태우는 내연기관 트럭을 처음 만들 때까지 동력은 화석연료로 물을 끓여 얻은 증기의 힘이 동원됐다. 이후 고틀리프 다임러도 트럭 제조에 나섰고, 푸조와 르노 같은 기업도 트럭 생산에 적극 나섰다.
이런 가운데 1892년 독일의 과학자인 루돌프 크리스티안 칼 디젤이 뮌헨의 한 기계공장에 편지를 보냈다. 자신이 개발한 새로운 엔진을 제조해 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새 엔진은 효율이 높고 힘 좋은 내연기관인 데다 여러 장점이 많아 증기기관을 밀어낼 것이란 확신도 있다고도 덧붙였다.
소식을 받은 곳은 유럽 내 산업용 증기기관 최대 기업이었던 마쉬넨파브릭 아우크스부르크(현 MAN)였다. 아울러 루돌프 디젤의 설계도를 꼼꼼히 살핀 인물은 공장의 책임자였던 하인리히 폰 버즈였다. 부친이었던 칼 버즈의 권유로 1857년 공장에 합류한 사람이었다.
그는 루돌프 디젤의 성공을 예감하고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생산을 밀어붙였다. 그 덕분에 ‘독일 기계기술의 비스마르크’라 불릴 정도로 산업 발전에 많은 공로를 세웠다. 앞서 1873년 최초의 냉동기도 하인리히의 아이디어였다. 그 결과 그는 1907년 정부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루돌프 디젤과 하인리히 버즈의 의기투합은 1893년 6월 최초의 디젤 프로토타입(시제품) 엔진으로 연결됐다. 이후 여러 차례 시험 엔진 제작에 이어 마침내 1898년 3월 최초의 상업용 디젤엔진(사진)이 완성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디젤엔진은 선박과 잠수함 등에 장착되며 강력한 성능을 입증했다.
최초의 디젤 트럭이 등장한 것은 그보다 조금 늦은 1908년이었다. 이어 디젤 엔진 제작공장이었던 MAN은 1910년부터 2기통 디젤엔진을 제작하는 등 이른바 디젤 엔진의 핵심 공장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디젤 트럭은 1930년까지 주력으로 활용되지 못했지만 점차 화물 적재량이 무거워지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디젤의 높은 토크는 절대적인 장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디젤이 점차 애물단지로 변해가고 있다. 대기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을 내뿜고 있어서다. 높은 토크의 장점이 루돌프 디젤의 예측대로 여러 산업의 발전을 견인했지만 서서히 동력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역력하다. 그럼에도 산업용 대형 이동수단에서 디젤의 마땅한 대안이 아직 없는 것도 현실이다. 수소가 새로운 동력 에너지로 서서히 떠오르지만 현실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니 디젤의 기술을 보다 진화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루돌프 디젤의 예언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말하는 배경이다.
권용주 <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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