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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맥] 英 탈퇴 후 EU, 유럽통합 차선책 'F-EU' 가능성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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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에서 첫 탈퇴 회원국이 나왔다. 영국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회원국이 난민, 테러, 경기침체 등에 시달리고 있으나 해결책은 고사하고 신속한 대응을 못하는 ‘좀비 EU’ 때문이다. 영국 내부적으로는 정치인을 비롯한 기득권층에 대한 환멸도 가세했다. 최대 관심사는 영국의 탈퇴를 계기로 EU와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이 미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경제적으로는 당장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가능성은 작다. 2020년 1월 31일 오후 11시부터 영국이 EU 3대 핵심기구(집행위원회·유럽의회·유럽이사회)와 산하기구를 떠났지만 관세동맹은 올해 말까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이후 상황이다. 올해 영국과 EU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못할 경우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유럽 통합은 단일 세계 경제 현안 중 역사가 가장 길다. ‘하나의 유럽 구상’이 처음 나온 20세기 초를 기점으로 하면 110년, 이 구상이 처음 구체화된 1957년 로마조약을 기준으로 하면 60년이 넘는다.

로마조약 체결 이후 유럽 통합은 두 가지 길로 추진돼왔다. 하나는 회원국 수를 늘리는 ‘확대(enlargement)’ 단계로 초기 7개국에서 28개국으로 늘어났다가 이번에 영국의 탈퇴로 27개국으로 줄었다. 다른 하나는 회원국 간 관계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심화(deepening)’ 단계로 유로화로 상징되는 유럽경제통합(EEU)에 이어 유럽정치통합(EPU), 유럽사회통합(ESU)까지 달성해간다는 원대한 구상이었다.

하지만 유럽통합헌법에 대한 유로랜드(유럽 단일화폐인 유로를 사용하는 국가) 회원국의 동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주권 문제로 ‘심화’ 단계가 먼저 난관에 부딪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절름발이 통합(통화 통합+재정 미통합)으로 언젠가 불거질 것으로 봤던 재정위기도 터졌다. 유럽 통합 과정에서 영국의 역할을 감안할 때 이번 탈퇴를 계기로 ‘확대’ 단계에도 시련이 예상된다.

브렉시트는 다른 회원국 탈퇴의 단초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유럽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유로랜드 탈퇴 문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던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가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EU 탈퇴 이후 영국 경제가 독자적으로 회생한다면 회원국의 탈퇴 움직임은 의외로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PIGS 등도 탈퇴 동참할 수도

벌써부터 회원국 내 분리독립 운동이 고개를 들고 있다. 영국의 스코틀랜드다. 스페인의 카탈루냐와 바스크, 북부 이탈리아, 네덜란드의 플랑드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와 근접한 동부 등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회원국 탈퇴가 잇따르고 분리독립 운동마저 일어난다면 유럽 통합은 붕괴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유일하게 남은 희망인 EU와의 FTA 체결에 실패해 노딜 브렉시트로 끝날 경우 영국 경제는 2030년까지 6% 위축될 수 있다고 영국 재무부는 추정했다. 가구당 연간 4300파운드(약 660만원)의 손실을 안아야 하는 커다란 규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잔류했을 때에 비해 올해 3%, 2030년에는 5% 위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도 EU도 경제 충격 커

영국 금융시장의 타격도 불가피하다. 브렉시트가 국민투표로 확정된 2016년 6월 이후 채권시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주식시장은 프랑스와 베네룩스 3국(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으로 이동해왔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인 노딜 브렉시트로 끝날 경우 영국 금융시장이 유럽의 배후지역으로 전락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남아 있는 회원국 경제도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를 계기로 내년부터 유럽 경제성장률이 1%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는 예측기관이 대다수다. 유로화가치도 등가 수준(1유로=1달러)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중앙은행(ECB)을 새로 맡고 있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가 금융완화 정책을 계속 추진할 뜻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탈퇴와 분리독립은 쉽지 않은 문제다. 1995년 캐나다 퀘벡과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도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반대가 더 많이 나왔다. 미국도 실리콘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의 분리 요구가 나온 지 오래됐으나 연방정부 차원에서 검토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영국의 EU 탈퇴를 이례적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첫 회원국 탈퇴’라는 최대 난관에 봉착한 EU는 ‘현 체제 유지(muddling through)’ ‘붕괴(collapse)’ ‘강화(bonds of solidarity)’ ‘질서 회복(resurgence)’ 등 네 가지 시나리오를 놓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재정위기, 브렉시트 등으로 노출된 문제에서 회원국이 정치적 명분과 경제적 이익 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면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제이컵 바이너 등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처럼 경제 발전 단계가 비슷한 국가끼리 결합하면 무역 창출 효과가 무역 전환 효과보다 커 역내국과 역외국 모두에 이득이 된다. 통합에 가담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다. 앞으로 유럽 통합은 회원국의 현실적인 제약요건을 감안해 새로운 방향이 모색될 것으로 예상된다.

잔존 회원국은 유럽 통합의 차선책, 이를테면 ‘F-EU(France+EU)’ 방안을 빠르게 추진해나갈 가능성이 높다. F-EU는 프랑스를 EU에 잔존시키면서 난민, 테러 등과 관련해 독자적인 해결 권한을 갖는 방식이다. 이때 프랑스는 EU의 구속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국의 현안을 풀어갈 수 있어 ‘탈퇴(exit)’보다 더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F-EU가 선택된다면 PIGS 국가와 같은 국수주의 움직임이 거센 회원국은 이 방식을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 특히 F-EU에 이어 ‘G-EU(Germany+EU)’까지 적용되면 유로랜드처럼 EU 차원에서도 ‘이원적 운용체계’가 검토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원적 운용체계는 유로화가 도입되기 이전에 운용된 ‘유럽 조정 메커니즘(ERM: European Realignment Mechanism)’과 같은 원리다. 독일 등 경제여건이 좋은 회원국(good apples)은 경제수렴조건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고, 그리스 등과 같은 나쁜 회원국(bad apples)은 느슨하게 적용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통합 흐름' 주목해야

유로랜드의 기본 골격도 보완될 가능성이 높다. EEU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통화통합과 재정통합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주무부서로 ECB와 가칭 ‘유럽재정안정기구(EFSM: European Fiscal Stabilization Mechanism)’, 상징물로 유로화와 유로본드 간 ‘이원적 매트릭스’ 체제를 갖춰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탈리아 천문·물리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극한 상황에서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고 던진 말 한마디가 먼 훗날 높게 평가받으면서 ‘지동설’이 확고해졌다. 영국의 EU 탈퇴로 유럽 통합 앞날이 당장은 어두워 보이지만, 그 속에서 움트고 있는 새로운 통합의 싹을 읽어야 한국 경제도 나중에 좋은 결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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