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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팬덤 정치'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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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극성 지지자들이 반대 진영에 욕설 이메일과 전화·문자 공격을 퍼붓는 통에 역풍을 맞았기 때문이다. 샌더스 측은 이럴 때마다 “캠프와 무관하다”고 발을 빼지만, 이런 논란이 샌더스의 중도 확장성을 오히려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팬덤(fandom)’의 ‘팬(fan)’은 라틴어로 ‘광신자’를 뜻한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이성적 언어가 아니라 좋고 나쁨을 가리는 감정적 언어다. 팬덤의 정치화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 통로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모바일 미디어 덕분에 영향력도 커졌다. 확고한 지지층을 얻으려는 정치인들의 필요까지 더해 졌다.

그러나 문제도 많다. 일부 극성팬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거나 다른 정치인을 비방하기 위해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등 사이버 공격을 일삼기도 한다. 매크로 프로그램(클릭을 반복하도록 명령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포털 사이트 댓글 여론을 조작하는 범죄까지 저지른다.

우리나라에서 정치 팬덤이 시작된 것은 2000년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부터다. 이후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이 생겼다. 몇 년 전부터는 문재인 대통령을 추종하는 이른바 ‘문(文)팬’들이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일부 팬들은 반대 의견을 용납하지 않고 소셜미디어로 집단 공격까지 퍼붓다가 정권에 부담을 주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같은 편이라도 생각이 다르다 싶으면 적으로 삼는다.

서민을 공격하는 일도 많다. 며칠 전 ‘코로나19’로 생업이 더 어렵게 된 전통시장의 반찬가게 주인이 경기가 어떤지 묻는 문 대통령에게 “(경기가) 거지 같아요. 너무 장사 안 돼요”라고 ‘서민 언어’로 답했다가 ‘문팬’들에게 사이버 테러를 당했다. 도를 넘는 팬덤은 ‘양날의 칼’로 작용한다. 그 칼날은 중요한 선거 앞에서 더욱 날카로워진다.

맹목적인 추종과 독선이 쌓이면 눈앞의 작은 전투에서 이기고 큰 전쟁에서 패할 수 있다. 여당이 비판 칼럼을 쓴 교수를 고발했다가 취하한 뒤 재차 고소를 강행한 극성 지지자들을 두고 당내에서조차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건강한 정치는 맹목적인 팬덤의 ‘독’이 아니라 합리적인 이성의 ‘약’을 먹고 자란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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