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검찰 국세청 등 이른바 ‘힘센 기관’을 거친 전직 고위 공무원을 사외이사·감사로 모시기 위한 상장사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각 상장사의 정기 주주총회 안건을 보면 지난 14일 기준으로 123개사가 총 207명의 사외이사 및 감사 후보자의 세부경력을 공시했다. 이들 후보의 경력을 분석한 결과, 학계나 공공기관, 전문직 경력이 없는 산업계 출신이 전체의 29.95%(62명)으로 가장 비중이 높았다.
권력기관 출신들은 전체의 21.73%(49명)으로 2위를 차지했다. 규제와 세금 문제로 고민이 깊은 기업들은 중앙 정부부처나 감독기관 등 이른바 ‘힘있는 권력기관’ 출신 인사들을 대거 사외이사나 감사 자리에 선임했다. 한국전자인증은 사외이사 후보자로 이용경 제 18대 국회의원을 선임했다. 이 전 의원은 창조한국당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구리 제조업체 풍산은 사외이사로 황희철 전 법무부 차관을,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김덕중 전 국세청장을 선임했다. 한온시스템은 김도언 전 검찰총장을 이번 정기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재선임할 예정이다. 김 전 총장은 한온시스템이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인수된 2015년부터 사외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국세청과 검찰 출신들은 특히 감사로 인기다. 대상홀딩스는 광주지방국세청장을 역임한 임창규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을, 만도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의 김영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를 사외이사이자 감사위원으로 선임했다. 녹십자엠에스는 제주세무서장 출신의 황상순 민우세무법인 대표세무사를 비상근감사로 재선임했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힘 센 기관 출신의 사외이사·감사들은 기업 측에서 경영진을 견제하는 본연의 역할보다는 대외 로비 업무를 수행할 것으로 기대하고 선임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관련 학과 교수들을 사외이사로 끌어들였다. 높은 전문성이 필요한 바이오 업계 특성상 이들의 조언이 경영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의과대학·약과대학 교수들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이 고려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코오롱티슈진은 이장익 서울대 약대 교수를, 녹십자홀딩스는 정규언 서울대 의과대 성형외과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특이한 경력의 ‘이색 인사’들도 등장했다. 일동홀딩스는 사외이사로 유화진 변호사를 신규선임했다. 1968년생인 유 변호사는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의사로 재직하다가 지난 200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국내 최초의 의사 출신 법관으로 화제를 모았다. 풍력발전부품 제조업체인 현진소재는 성익환 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을 사외이사로 신규선임한다. 성 전 책임연구원은 지하수토양환경학회장을 역임한 ‘물 전문가’로 유명하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