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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위생강국' 日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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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안에 이대로 있다가는 전멸할 것 같다. 빨리 전원 검역을 시행해서 우리를 풀어달라.”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에서 어제 ‘코로나19’ 감염자가 70명이나 늘어나자 승객들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크루즈 내 확진자는 350명을 넘어섰다. 승선 인원 3700여 명의 10%에 육박하는 규모다. 일본 본토에서도 확진자가 50명 이상 나와 전체 감염자는 400명을 돌파했다.

일본 정부가 어제 전염병 전문가 패널을 소집하고 ‘19일 이후 하선 방침’을 검토 중이지만 ‘뒷북 조치’라는 비난이 거세다. 일이 이렇게 커진 것은 일본 정부의 잇따른 오판과 늑장 대응, ‘통계 꼼수’ 등 여러 가지 요인이 겹친 탓이다. 과거 매뉴얼에만 의존하다가 신종 바이러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일본은 크루즈선에 홍콩 감염자가 탔다가 내렸다는 사실을 이달 2일 홍콩으로부터 통보받고도 사흘간 방치하다가 10명의 집단 감염이 확인된 뒤에야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다. 그 사이에 탑승객 들은 폐쇄적인 배 안에서 서로 밀접하게 접촉했다. 처음부터 선상이나 부두에 임시 검진시설을 차려놓고 증상 유무를 판별했어야 옳다.

승객들을 배에서 내리게 하면 감염자를 일본 국내 집계로 잡아야 할지 모른다는 부담 때문에 하선을 늦췄다는 지적도 대두되고 있다. 도쿄올림픽을 5개월 앞두고 여행자제국으로 분류될까봐 미적거렸다는 얘기다. 비슷한 일을 겪은 홍콩은 달랐다. 인구 750만 명인 홍콩은 지난 5일 3600여 명이 탑승한 크루즈에서 확진자가 나오자 접촉자 1800여 명을 하루 만에 검사하고 나흘 뒤 전원 하선하게 했다.

과거 매뉴얼인 ‘미즈기와(水際·물가) 작전’의 한계까지 겹쳤다. 미즈기와는 외부 병원균을 공항이나 항구에서 원천봉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각지에서 이미 환자가 속출했다. 일본 내 코로나19 첫 사망자인 80대 여성은 사망 이후에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일본 정부의 미숙한 대응에 실망한 미국은 전세기로 크루즈선의 자국민을 이송했다. 처음부터 갈팡질팡하며 사태를 키운 일본은 결국 ‘전염병 후진국’이란 오명을 자처하고 말았다. 우리나라로서도 자체 방역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방역망 붕괴라는 ‘주변국 변수’까지 신경써야 하는 처지가 됐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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